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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Nov 01. 2015

어떤 이별

첫 번째 편지 - 남겨진 이의 사랑

 왜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됐는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읽게 될 내용인데, 굳이 이름도 모습도 없는 ‘너’에게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 평소에 편지쓰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꽤 자주 쓰는 까닭도 있을 거고, 감성이 출렁이는데 자정이라서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선뜻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도 한몫할 테지.

 아마, 너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라서 그런가봐. 멀어질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고 늘 내 편에 서서 지지하고 기다려주니까. 안심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 ‘자기만의 방’에서 늘 기다려주는 너. 그래서 많이 고맙고. 마지막으로, 이 편지는 발신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수신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위안이지. 제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답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도, 계속 편지를 보내다 보면 내심 답장받기를 바라게 되거든.

 이야기를 시작할게.


 마음을 많이 쏟았던 사람 하나를 떠나보냈어.
처음 만났다가 헤어졌을 때처럼, 그 사람은 돌연히 휙 내 곁을 떠나버렸어.

 그는 사람 때문에 겪는 세파에 시달릴 때 만났지. 첫만남은 짧고 강렬했어. 비록 몇 시간 뿐이었지만 그의 생애와 진솔함은 지쳐있던 나에게 사무치게 다가왔고, 나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다만 사람에게 지친 건 이야기하지 않았지. 또다시 상처 입을 게 두려워서. 서로의 연락처를 남긴 채 그는 휑하니 사라졌고, 강렬함이 사그라들때 즈음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어.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습니다.

 그는 내 속사정을 짐작했는지, 가만히 보듬어주었어. 세심하게 어루만져 주었어. 나는 또 희망을 품고 기쁨에 젖어 서서히 빗장을 풀어갔고. 좋았지만 한편으론 많이 혼란스러웠어. '가까워져도 괜찮은 걸까? 다시 누군가를 믿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감정에 취해 어쩔 줄 몰라하며 심술쟁이, 변덕쟁이 어린아이가 됐습니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에서 그 사람 이외의 남에겐 절대 보이지 않는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양 볼 가득 행복을 머금기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혼자 즐거워하기도 하고.. 그랬었지. 그가 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위로 받고, 치유 받았습니다.


 함께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의 서사를 공유하면서, 가끔씩 사소한 말다툼, 오해, 비난.. 그런 작은 신호도 나타났지. 그렇지만 이내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고 나는 안심했어. 흔들리며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운 거라면서, 오히려 더 깊은 사이가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어쩌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났어.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위험해졌던 거야. 우린 다가간다고 생각했는데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거야, 서서히 말이에요. 그가 훨씬 먼저 알았고, 나도 마침내 진실을 마주했을 때.. 끝끝내 비밀스런 예감을 품고 우리가 만난 어느 날 저녁..

 세월이 흘렀지만 내가 그때를, 그 순간을 어떻게 잊겠니? 아무 말도 없이 손짓하고 돌아서서 길을 가는 그의 뒷모습. 언제나처럼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하염없이 주저앉아 버렸었어. 입속으로 “미안해요. 잘 가요, 고마웠어요.”를 몇 번 되뇌면서.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랐지.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걸 문득 깨달았으니까. 알게 됐으니까. 서로에게 다가가려 애쓸수록 오히려 상처가 될 뿐임을..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그를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네. 그때처럼 혼자 가버렸어. 늘 저만치 앞서가곤 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함께할 때도 늘, 기다려달라고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만치 앞서갔네. 조금만 기다려주었다가 빛바랜 추억과, 영문 모를 아픔과, 끝끝내 표현 못다 한 마음도 같이 가져가버리지. 한 번만 뒤를 돌아보지.. 늘 내가 여기 있어왔는데.

 그래도 원망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한때나마 우리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지금까지의 생애를 끌어안으려 애썼다는 데 감사하고 싶습니다. 비록 남겨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지만,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적어도 사랑한 시간들은 진실했으니까. 그렇기에 내 모습도 당신의 어딘가에 어떤 모양으로든 남겨져 있을 거니까.


 이제는 실체가 없는, 그래서 더 부풀어오른 당신을 향한 그리움 한귀퉁이를 붙잡고, 나지막이 고백해봐요-


"잘 지내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두 번째 편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당신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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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표지 및 2번 이미지: http://instagify.com/user/blauping/290517395

1번 이미지: www.elizmallory.com by Stuart H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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