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대신 청각. 내 글을 직접 읽어준 설렘에 대하여
“읽어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눠달라는 요청에, 그는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어? 글을 직접 '봐야' 하는데..
사실 전에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니, 마음에 드는 글 하나를 ‘읽어’달라고 했다. 나누려 했던 게 워낙 길기도 하고, 읽기 어색하여 에둘러 넘겼다. 그 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또 낯설었다. 짧은 순간, 고민했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면, 어느 생각이나 어떤 사건, 또는 요런 마음이 요동치며 밀려온다. 하루에도 사건사고나 생각, 감정은 수십 수백 번씩 나를 훑고 지나가지만, 어떤 것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격하게 차오른다. 강렬하게 밀려온다. 압도당한다. 어떻게든 표현하고픈 욕구로, 아름답게 다듬어 간직하고픈 애절함으로.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픈 떨림으로. 울림. 내 속의 울림이 되어 메아리친다. 이러한 ‘울림’을 잘 다듬어 갈무리하고 나누는 방법이 있다. 내겐 ‘글쓰기’다.
글자와 문장, 문단과 문단, 글 전체로 표현한다. 매번 하는 작업이지만 참 오묘하다. 같은 문장인데 문장부호 유무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기도 하고, 같은 내용인데 문단구분이나 배치에 따라 흐름이 확 달라진다.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씨’면 끝까지 읽기 쉽지 않기에, 적재적소에 색깔과 이미지를 넣는다.
색깔은 은근히 이목을 끌어서, 이 또한 같은 문장(단어)인데도 다르게 다가오는 효과를 준다. 문장(단어)내용과 색깔 배합을 맞추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미지는 내 속의 심상(心想/마음속 이미지)과 최대한 비슷한 것을 찾아 배치한다. 가능한 한 독자들과 느낌을 그대로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 못지않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과정이 바로 이미지 찾기 및 배치 작업이다. 이 모든 작업은 상대가 '직접 읽을 때’ 완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그는 ‘읽어달라'고 했다. 문장부호, 이미지선정 및 배치, 단어 색깔, 문단구분과 배치 등 심상을 최대한 세밀하게 공유하려 한 세심한 작업들이 거의 배제된다.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읽어줘."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입을 열어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못할 건 없지. 퇴고를 거듭하며, 혹은 다 완성된 뒤 특히 신경 쓰이는 부분들은 소리 내어 읽어보곤 하니까. 하지만 전체를 읽는 건 처음인데.. 게다가 다른 사람이 듣는다니. 읽는 내내 은근히 떨렸다.
완급조절 하며 내 문장들을 읽는 동안, 구름에 둘러싸인 듯, 물결치며 휘돌아가듯 생각과 감정이 출렁였다. 내가 쓴 글이라 더 그랬다. 어떤 사연과 어떤 마음에서 쓰게 된 글인지, 왜 이 부분에 굳이 문장부호 혹은 색깔을 넣었는지,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퇴고하며 이 문단을 몇 번씩이나 고쳤는지.. 글쓴이만이 아는, 나와 나의 이야기.
시각 대신 청각으로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레 말을 덧입어 글 속에 감정이 실렸다. 어느 부분에서는 고양되고, 어떤 데서는 축 쳐지고. 차분하고, 즐겁고, 기뻐하고, 그리워하고, 애틋하고……. 어조와 억양, 호흡, 작은 손짓, 표정 등으로도 내용을 표현했다. 내가 쓴 거라 더더욱 몰입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있으니 새로웠다.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직접 나누게 되다니……. 누군가 내 글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상대방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낭독에 녹아들어 조요히 흘렀다. 꼭 마음을 실어 보내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즐겁게 흥얼거리다가, 가만히 핸드폰을 꺼낸다. 잠깐 생각하고, 글을 띄운다.
눈으로 빠르게 한 번 훑었다. 나도 모르게 까르륵 웃었다. 그리고 작게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표지 및 마지막: "Hans"
1번: "Janeke88"
2번: http://publicdomainpictures.net "Talia Fe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