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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Sep 30. 2015

아침, 편지

내 온기가 편지로 당신에게 닿기를.

서랍 속 글 ① - 2010. 04. 05 작성

 늘 피로에 절어 잠 때문에 가지 못했던 아침 기도회. 어제 간절하게 바라고 자서 그런지, 온전한 정신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른 아침 기운을 즐기며 집을 나섰습니다. 하늘색은 그다지 맑진 않았습니다만, 오랜만에 보는 이른 하늘이기에 내 마음은 설렜습니다.

 솔솔. 약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어제 내가 그리움을 실어 보냈던 한 점의 바람은, 내 바람대로, 그 사람(들)에게 가서 닿았을까요. 어쩌면, 방금 전 나를 지나쳤던 바람 속에도 누군가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누군가와 잇닿아 있고 싶은 마음이 비단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우체통만 보면 설렌다.

 기도모임 장소로 가다가 발견한 새빨간 우체통.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외투 안주머니로 손을 뻗어서, 조심스레 편지를 꺼냈습니다. 아기자기한 검은색 글씨로 우리 집 주소와 내 이름, 친구의 집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우편번호도 함께. 오른쪽 상단에는 250원짜리 우표가 붙어 있습니다. 집에 남아있는 것은 일전에도 쓴 적이 있는 스티커식 우표 2장, 그리고 일반 우표 1장입니다. 조만간 또 사러 가야겠습니다. 내가 보내는 한 통 한 통의 편지가 내용이 다르듯, 우표 또한 가급적이면 고유한 것이었으면 하니까요. 우체통의 오른편, 그러니까 '타지역 우편물'에 편지를 밀어 넣고선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침 해가 서서히, 점차 높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관조하며 <시에나 찬가>를 듣던 나는 불현듯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렸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문득, 항상 하곤 하는 생각인: '나는 왜 편지를 쓰는가'에 대해서 잠시 고민했습니다. 릴케는 그 답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가을날>, 릴케

  고독=외로움. 외로움은 내가 편지를 쓰도록 하는 가장 원류적인 이유입니다. 외로움이나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렇게 첨단화된 시대에 굳이 편지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여로모로 불편하니까요. 그래도 난 이따금씩 편지를 씁니다. 동시에 내심 바랍니다: 편지를 쓰고 싶어 지는 상대가 많았으면 하는.. 늘 그 두근거림을 지니고 살고 싶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받아 들고 읽어내려 갈 상대의 표정과 반응 그리고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한 자 한 자 눌러쓸 때 거기에 압축되는 '상대방을 위한 시간' 또한 좋습니다. 인간적인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츠지 히토나리의 말마따나 "편지는 완벽한 수제품"이며, 어쩌면 편지가 소실됐다고 하더라도 영영 가슴 한 켠에 남아있을 수 있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마따나 "편지는 그저 종이일 뿐. 태워버려도 마음에 남는 건 남고, 가지고 있어도 남지 않는 건 남지 않는"것이니까요.


 2시 반에 우체통을 열고 내 편지를 들고 갈 집배원님은, 자기 업무를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와, 아직도 편지하는 사람들이 있군!'하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교복을 입고 우체국에 가면 싱글거리며 우표를 건네주는 2번 창구 아주머니처럼, 우표 뭉치에서 두서너 장을 떼어줄 때의 조심스러운 손길처럼, 내 편지도 그러한 온기를 머금고 도착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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