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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Aug 21. 2021

삶이 지나간 자리

오래전 짝꿍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이런 사람이면 괜찮겠다는 믿음에 결혼을 약속 후 강원도 짝꿍의 집에 인사드리러 가던 길

열차에서 내렸는데 부르릉 거리며 커다란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합창이라도 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ㅡ형수님! 어서 오십시오 ㅡ라고 인사를 해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형수님이란 호칭에 어색하기도 하고 그들이 반갑기도 했었다

그 시절은 오토바이도 귀했고 커다란 오토바이에 헬멧을 쓰고 가죽옷 복장의 청년들의 모습은 정말 멋졌는데 그들이 동생과 사촌 동생들이라 해서 아주 든든함도 있었다

그들을 만남은 강원도의 시댁 식구로는 첫 만남이었고 그중 한 사촌 동생은 너무도 다정하고 유쾌한 성격에 집안의 대소사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어우러지는 모습에 우리와의 관계는 누구보다 각별했었다

그도 결혼을 해서 아이들과 그의 부인인 동서와 같이 여름휴가도 즐기며 지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너무 여려서인지 골초에 술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에 가정생활은

순탄하지 못해서 만나면 부탁하는 말은

ㅡ담배 좀 끊고 술좀 줄이고ㅡ였다

그의 술 때문에 아내와도 멀어지고 몸도 망가지고 홀로 지내던 어느 해인가 동서는 말했었다

ㅡ아파서 수술을 하고도 술을 마셔대니 지금이라도 술만 끊으면 함께 살겠다고 했는데도 안되니 형님이 좀 말려 주세요ㅡ라고

하지만 멀리할 수 없다는 술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서로를 원망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는데 얼마 전 만남에서 다시 부탁해 보았다

ㅡ술좀 줄일 수 없겠느냐

 그대로 술 마시면 죽을 것인데

더 나이들 때까지 우리 함께 오래 살자고

그러니까 술좀 줄이라ㅡ고

그는 말했었다

ㅡ형수님! 일하고 집에 오면 옆에서 따뜻 한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술 마시면 누가 옆에서 말려주는 사람도 없고 무슨 재미로 삽니까

술이라도 마셔야 살지ㅡ

그 말을 듣고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늘 편히 쉼도 여유도 온전히 누려보지 못하고 일하고 힘들어서 술 마시고 홀로 밥 먹다 외로워 술을 마신다는데

삶이 무엇이길래 저처럼 고달프고 외로움에 마신다는 술까지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가

그 후로 오직 건강하기만 바랬었다

엊그제  아침 일찍 울리는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담백한 목소리는

ㅡ나쁜 소식 전해요 ㅇㅇ형이 가셨네요

너무도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ㅡ왜 왜 이렇게 일찍 가는데

선산의 벌초 열심히 한다 해서 예초기도 갖다 주었는데 벌초도 안 하고 가면 약속이 틀리잖아 이렇게 가면 어떡해

우리 강원도로 가면 같이 낚시도 다니자고 했는데 왜 왜 벌써 가는데ㅡ

암이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냉장고에 술병이 있더라고 한다

어쩌겠나 삶이 술이었는 걸

사촌들 중 가장 가깝게 지내던

언제나 제일 반기던

우리가 사랑하는 짝꿍의 사촌 동생은

이렇게 황망히 먼길을 떠나갔다

그의 선한 삶의 모습을 주께서 보셨으니

그의 영혼을 천국에 받아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한 사람의 삶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겨질까?

그의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이 그 자리를 메워갈 것이지만 나의 마음에는 그분의 선한 미소와 잊혔던 젊은 날의 모습이 다가온다 커다란 오토바이에서 헬맷을 벗으며 싱그런 미소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내게 꾸벅 머리 숙이며

'어서 오세요 형수님!'라고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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