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기억 거슬러 오르다 만난 어느 날
꼬맹이네 시골집 마당에서 흙벽돌을 찍고 계시는 아버지 곁에서 흙놀이네 신이 난 형제자매들의 웃음소리가 드높다
외양간을 다시 만드시겠다며 빨간 황토흙이 마당에 쌓이고 작두로 썰어 놓은 짚도 있고 물통에는 물도 가득 담겨 있다
준비는 완료되었고 아버지는 외치셨다
자! 이제 시작해 보자
흙에 볏짚을 넣고 물을 부으시면 우리는 그위로 들어가 신이 나서 깔깔대며 밟았고 아버지는 그 흙을 직사각 네모판에 채워 꾹 꾹 밟아 빼내면 신기하게 내모진 벽돌이 되어 나왔다.
아버지 일은 좀 거치셨는데 그 이유는
어린 시절 늘 누군가에 업혀 학교도 다니셨다는 집안의 장손 도련님으로 자라셨고 외국에 나가 사셨기에 일이 그리 손에 익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하셨는데 그래도 열심이셨다
누렁이가 편히 쉴 새 외양간을 만들기 위해 얼굴에 흙을 묻혀가며 즐거운 벽돌 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 앞에 번쩍번쩍 빛나는 까만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차 문이 열리더니 까만 양복을 입으신 신사분들이 내리시더니 흙 범벅이 된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으시며 인사를 한다
한 선생님! 왜 이러고 계십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서울로 갑시다라고
아버지는 웃으시며
왜 이러십니까
이 촌놈의 흙 묻은 손을 잡으시다니 ㅡ
그분들은 완곡하게 서울로 가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듭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던 어린 나는 너무 서울로 이사 가고 싶어 아버지 곁으로 가서
아버지! 서울로 이사 가요
아버지! 이사 가요라고 외치자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어른들 일에 나서는 게 아니라시며 꾸중을 하셨었다
아버지는 정중히 그분들을 돌려보내셨다
아버지의 농부의 삶은 녹녹지 않으셨고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이셔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늘 언젠가 찾아와서 아버지 손을 잡고 부탁하던 그날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곁에 앉아 옛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너무도 즐겁고 따뜻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이야기 중 아버지께 물었다
왜 그때 찾아온 신사분들의 부탁을 듣지 않고 시골에서 고생하시며 사셨느냐고ㅡ
아버지는 고통을 참으시면서도 빙그레 웃으시더니 잊지도 않으시고는
네가 그때 서울 가자고 떼쓰다가 혼났었지? 라시며 한참을 조용히 계시던 아버지는 감았던 눈을 가만히 뜨시더니 그때 서울로 못 간 것은 엄마 때문이었지
엄마가 정말 예뻤거든
그때 서울은 거의 무법천지였고 깡패들이 많아서 예쁜 여자를 보면 데려가 버리면 그만이었단다
그런 곳에 엄마를 데려갔다 가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랬지
아버지는 후련하다시는듯 활짝 웃으셨었다
그 병상에 계시다가 하늘 가신 지도 먼 옛일
그 이쁘다는 어머니도 작년에 가셨는데
이제 편안하게 하늘에서 함께 계시는지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변하셔서 알아보기는 하셨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병상에 누우신 아버지의 시골살이를 택하셨던 이유를 고백하시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시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 가득 담긴 마음 바람결에 띄워 본다
행여 두 분 마주 보며 받아보실지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