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바람 붓

참 이런 상황이 올 줄이야

by 한명화

어제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누구지? 아들이네

전화를 받자 아들은 발코니로 나오셔서 밖을 내려다보란다

얼른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내려다보니

아들 내외가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여보 애들이 밖에 있어요 이리 오세요

짝꿍도 얼른 나와 밖을 내려다보는데

'장보기 해서 현관 앞에 올려두고 내려왔어요'

왜 안 들어오고 어서 들어오라고 하자

사람들 많은 곳에 다녀와서 부모님 안전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며 문밖에 있는 식재료

들여놓으란다

우리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아들 며느리는 밖에서 올려다보며 그렇게 안부를 묻고는 아들은 신신당부를 한다

마트도 가실 일 있으심 꼭 전화로 배달을 신청하라며 잘 드셔야 한다고

참 자식은 이래서 낳아 길러야 하는 것을ㅡ

지난 1월 설 무렵 코로나로 안전을 위해 장보기를 적극 말렸었다

냉장고에 다 있으니 제발 사람 많은 대형마트에 가지 말라고 ㅡ

그리고 지난 2월에는 아들의 확진으로 장보기를 못 해 드렸다며 요즘에는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둘이서 방법을 연구 중이라더니 영 마음이 불편했나 보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장보기를 잔뜩 해서는 현관 밖에 올려놓고는 얼른 내려왔다한다

벨을 누르면 들어오라 하시고 또 들어가고 싶을 터이니 아예 밖으로 나가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며

아들 내외는 위를 올려다 보고 우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렇게 아들 며느리를 보내야 했다

차를 타고 멀어져 가는 모습에 고마움이 가슴 가득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자식 낳아서 길러 놓으니 이리 든든한 것을

코로나 시국에 행여 냉장고가 비워져 부실한 식사 할까 봐 저리 장보기를 해놓고 가다니

멀어져 간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발길을 돌려 현관문을 열자 엄청난 양의 장보기 상자들이 놓여있다

어서 가져다 냉장고에 넣으라 더니

며느리는 정리 도와 드려야 하는데 그냥 가서 어떡하느냐며 걱정하더니 많기도 하다

주방으로 옮겨 놓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마침 딸이 집에 있어 함께 정리를 시작한다

그동안 냉장고 파먹기 실천으로 텅 비어버린 냉장고에 차곡 차곡 채워간다

고기는 종류별로 분리 소분해 넣고 생선류, 베이컨, 순대, 만두, 빵, 엥? 비스켙도 있네

정말 골고루도 사 왔다

들어왔음 함께 끓여서 맛있게 먹었을 곱창전골 찌개거리도 냉장고에 넣으며 아들보다 며느리의 지혜와 마음씀이 너무 예뻐서 혼자 되뇐다

'이쁜 며느리 너의 마음씀이 고맙다'라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군자의 모습 닮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