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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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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Sep 22. 2022

배론의 두 번째 보물

황사영 토굴

순교자들의 집
진복문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헌양탑
옹기 가마 굴
베론의 보물ㅡ황사영 토굴
베론의 보물ㅡ황사영 백서 토굴 안
성 요셉 성당
무명 순교자의 묘
성 요셉 신학당
신학당 내부

두 번째 보물을  찾아보기 위해 새롭게 구성된 땅에서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건너 옛터로 왔다

다리를 건너오자 바로 마주한 건물은 순교자들의 집이었으며 이곳은 출입을 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주임신부 명으로 걸려있었다

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은 일반 신도들 묘역?

이곳은 순교자들과 신부님들의 묘역인가?

그 앞에는 많은 의자가 쉬기도 하고 편안히 놀다 가라는 듯 비치되어 있었다

진복문이란 표지의 건물 앞에는 공사 중을 알리고 옆으로 붉은 벽돌로 쌓고 그 위에 누각이 있는 아주 높은 탑이 있어 보니 ㅡ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헌 양탑ㅡ이었다

탑 앞에 동상의 의복이 관복인 것을 보니 그의 직업이 평민이 아니었음을 알리는 듯했다

그 밑으로 옹기 가마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옹기를 구워 팔아 연명하는데도 필요했지만 이곳의 본모습을 숨기기 위해 옹기장이들로  위장한 면도 있었으리라

옹기터 옆에 황사영 토굴의 안내판이 있어 돌아들어가니

배론의 두 번째 보물ㅡ황사영 토굴ㅡ이었다

6.25 때 까지도 본모습이 있었으나 소실되어 새롭게 조성된 모습이라고ㅡ

토굴 앞에 앉아 마음을 모아보다가 토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 속에 머물며 중국 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이 백서는 전달이 실패했고 황석영도 잡혀 죽임을 당하고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귀양살이를 했으며 두 살 난 아들도  추자도로 귀양을 갔다 한다

이 백서의 원본은 현재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토굴을 나와 성요셉 성당과 명 순교자의 묘를 돌아보고 성요셉 신학당으로 왔다

성요셉 신학당은 1855년 프랑스 선교사 메르트르신부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이때 교우촌의 장기주 요셉이 자신의 집을 신학당으로 내주었다

이 신학당은 프랑스인 두 신부가 돌아가며 교육하다가 발각되어 1986년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으며 학생들도 모두 순교하였다

성요셉 신학당은 한국교회의 최초 신학교임과 동시에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한다

믿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담대함에

숙연해지며 멀리 이국땅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프랑스 신부님들의 사건으로 병인 양요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나?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세 번째 보물을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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