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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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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Nov 15. 2022

궁남지의 가을 보내기

늦은 오후 궁남지를 찾았다

차에서 내려 잠시 내려다본 궁남지는 연꽃은 고사하고 왜인지 을씨년스러워 별로 가까이 가 볼 마음이 없었다

왜? 여기까지 왔으니 걸어봅시다 ㅡ라는 짝꿍의 말에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꽃은 고사하고 키가 큰 연꽃잎이 말라버리고 연밥도 고개를 숙이고 또는 쓰러져 넓은 연못이 지저분해 보여 마음이 눅눅해졌다

잠시 더 안으로 들어가며 지는 햇살에 비치는 떠나는 가을은 어라?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석양에 비친 쓰러진 연밥대와 바스러진 연잎의 슬픈 노래는 내년에 다시 멋진 꽃을 피워낼 거라고 너무 실망은 말아달라고 속삭이는 듯했고 그 나름 가는 가을을 입고 있는 풍경이 멋스러웠다

나름 사명을 다하고 빛바랜 꽃길과 나무다리로 이어진 연못 속의 사잇길로 들어서니  가을은 자신들의 계절이라며 춤추는 갈대숲 길은 아!ㅡ탄성을 지르는 가을로  담뿍 담겨있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길 건너 저만치서 옛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분의 모습은 서정 그 자체를 선물해 주었다

갈대 길을 빠져나오자 정자가 있고 분수를 품어대는 맑은 연못이 있었고 그 곁에는 춘향이의 그네? 가 있었다

정자는 공사 중이라 막아놓았고 예전 같으면 벌써 달려가 그네에 올라 '밀어주세요' 라고 외쳤을 것인데 여행의 강행군으로 너무 지쳐 나는 못 가네를 외치며 그네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으로만 즐겼다

눈부신 빛에 눈을 돌려 바라보았는데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쏟아내는 빨간 석양이 안간힘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넋을 놓고 한참을 그 모습에 빠져있다가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또 다른 연못가에 천년의 사랑이란 푯말 건너에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인듯한 인형을 연못 안에 세워 천년의 사랑을 전하고 있어 빙그레 미소를 안겨 주었으며 뜻밖에 작은 연꽃이 피어 있고 오리 한쌍이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계절을 넘겨 찾은 여행객을 위로하는 듯했다

석양빛을 받으며 맑은 물속에 떠있는 연잎의 반짝임과 앙증맞은 연꽃 그리고 신이 난 두 마리 오리의 몸짓에 무언가 조금 아쉬웠던 궁남지와의 만남은 그 아쉬움을 붉은 석양이 빛으로 채워 주며 가을을 붙잡고 있는 궁남지의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가만히 약속 하나를 걸어두고 궁남지를 나왔다

그래!

내년 연꽃이 만발할 때 다시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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