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바람 붓

부처는 곧 자기 자신이다

문희스님과 문수보살

by 한명화

당나라 시대 무착 문희 스님이

문수보살님을 친견할 목적으로 문수보살님이 자주 출현 하신다는 오대산 금강굴로 찾아갔다

그곳에 이르러 한 노인을 만나 오대산에 스님들이 많이 사시냐고 물었다

그 노인은 前三三 三이라는 후대에도 유명한 화두를 주었다

자신의 질문에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라니ㅡ

노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자 노인은 균제라는 동자를 부르며 가자고 하니 동자는 사자로 변했고 노인은 문수보살로 변하여 그 자리를 떠났다

그토록 뵙고 싶었던 문수보살을 눈앞에서 알아보지 못한 무착문희 스님은 탄식했다

그 후 무착 스님은 더욱 정진하였고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해 겨울 동짓날이 되어 커다란 솥에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팥죽 솥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서는

'무착은 그동안 무고한가'라고 인사를 했다

잠시 가만히 있던 무착스님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팥죽을 젖던 커다란 주걱을 들어 문수보살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이에 문수보살님은

'어이 무학 자네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문수일세'라고 하자

무착은 소리쳤다

'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라고.

이 뜻은 부처는 다른 곳에 있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며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10편의 벽화

벽화의 설명을 근거로 글을 쓰며 조심스러웠다

행여 나의 생각이 잘못 가미되는 건 아닌지ㅡ

이제 마지막 열 번째

가장 고민이 되었다

불교인이 아니라서 인가

스님이 많이 사느냐는 무착의 질문에

문수보살이 던진 화두

前三三 後三三 은?

앞이나 뒤나 모두 같다

그러니 중생 모두 다ㅡ이다?

모두가 스님이고 모두가 또 스님이 아니다?

누구나 다 스님이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혼자서 생각 속에 빠져 보지만 어찌 문수보살의 깊은 뜻을 이 무지함으로 풀 수 있으랴


마지막 열 번째 그림의 글을 올리며

10번의 글 잘 올린 것인가?ㅡㅡ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길에 서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그려 보는 게기가 된 것 같아 열폭의 벽화를 만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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