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형은 작은 석견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신라,서쪽은 백제의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길로산 하나를 사이에두고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달랐으며 생활 풍습도 많이 달랐다 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백제쪽 통문 위에는 소나무가 있고 신라쪽 입구 위에는 소나무가 없었다
양 방향을 넘나들던 석견산 능선 밑 바위에 일제는 수탈의 목적으로 바윗굴을 뚫어 우마차가 다니게 하였다는데ㅡ
라제통문???
일제는 삼국시대와는 거리가 있는데 그들이 수탈을 목적으로 굴을 뚫고 라제통문이라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글을 쓰며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라제통문의 뜻에 비추어 나름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신라와 백제사이 석견산에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바윗굴이 있었는데 그곳을 통하여 양쪽의 사람들이 왕래하며 통문이라 했다 신라와 백제의 라제통문ㅡ
그 후 일제가 수탈을 위해 그 굴을 확장하여 우마차가 다닐 수 있게 하였다
그러면? 그대로 라제통문이 될 수 있다
물론 나의 추론이 엉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라제통문이라는 이름을 비추어 볼 때
가당하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통문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옛 복장을 하신 어르신이 정자에 계셔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