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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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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Oct 14. 2023

조선의 청백리와 반구정

조선의 청백리 황희정승

그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으나 신왕조의 간곡한 요청으로 1934년 태조 3년에 다시 조선의 관직에 올랐으며 영의정을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합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황희는 양영대 군 세자 폐출을 극력반대하여 태종의 노여움으로 5년 동안 남원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남원 광한루를 지었는데 현재도 남원의 명물로 존재하고 있다 

황희는 세종이 가장신임한 재상이었기에 영의정이 된 1431~1449년 은퇴하기까지 은퇴를 여러 번 신청했으나 번번이 반려당했고 세종은 거의 죽기 전까지 황희를 곁에 두었고 1449년 10월 드디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4개월 후 세종은 승하했다

ㅡ황희는 임금이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으면 나라 다스리기가 쉽고 믿음을 잃으면 다스릴 수 없다며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경제속육전이라는 방대한 양의 법전 편찬에 참여하고 그 후 이 법에 따라 꾸준히 법치를 실행하였으며 법이 꾸준해야 백성이 믿고 따르며 자주 바뀌면 믿음이 사라진다며 불필요한 개정을 금하였다

ㅡ세종 때 시작된 육아휴직

서울과 지방의 노비가 출산에 임박한 달과 출산 후 100일을 부역을 시키지 말도록 입법 출산을 하면 그의 남편도 30일 후에 부역에 종사하게 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러한 정책을 펼칠 수 있음은 황희정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ㅡ황희의 부인 양 씨가 크고 좋은 배를 몇 개 얻어 남편에게 주려고 현판뒤에 숨겨두고 친정에 다녀왔다

황희가 집에 와서 있는데 조용한 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살펴보니 현판뒤에 배가 몇 개 있는데 쥐가 그걸 물고 가려 애쓰고 있었다

둥글고 큰 배라 포기할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다른 쥐와 같이 와서는 한 마리가 벌러덩 누워 배를 안고 다른 한 마리가 배를 안은 쥐를 물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기가 막혀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그 방법으로 배를 다 물고 구멍 속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쥐의 지혜에 감탄할 밖에ㅡ

그 일을 잊고 지낸 어느 날 부인으로부터 어린 계집종이 매를 몇 대 맞더니 배를 다 먹었다는 실토를 하더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깜짝 놀란 황희는 탄식을 했다

얼마 후 황희는 세종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많은 죄수들 가운데 억울한 자들이 아주 많을 거라며 다시 살펴 주시기를 간청했다

세종은 즉시 오랫동안 옥살이한 모든 죄수들을 다시 살펴보니 많은  죄수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억울한 많은 죄수들을 풀어 주었다

이런 황희였으니 세종께서 그를 얼마나 믿고 의지했을까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었는데 6진을 개척하고 여진족을 정벌했으며 수양대군과 맞섰던 김종서 장군도 황희를 두려워했다니 그의 기계를 알 것 같다

그런 황희가 1449년 10월 87세가 되어 눈도 귀도 어둡다 다시 청하니 세종은 그를 보내 주었고 노구의 몸으로 임진강변의 반구정에 돌아와 후학양성을 하다가 1452 년 그의 나이 90세에 사망했다

ㅡ반구정을 돌아보고 멋진 풍경에 감탄했는데 이 글을 쓰며 황희라는 대단한 인재의 일대기를 알게 되어 다시 한번 감탄하며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 곁에는 올곧고 청빈하며 인류애가 있는 신하가 있고 없음이 나라의 번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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