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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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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Oct 13. 2023

500년의 잠에서 깬 등명 낙가사

강릉 통일공원 가까이 바닷가에 위치한 등명낙가사가 있었다

지나는 바닷가 길가에 있어 들어갔다

주차 장에 내리니 바로 가까이에 일주문이 있었고 일주문 앞과 옆에 여러 석상들이 있어 좀 어리둥절했다 

일주문 옆 석상들이 너무 많아 뭐지? 지금껏 보아왔던 대부분의 일주문은 단청은 화려하지만 주변이 간결하고 단아했었다

요즘에는 이 처럼 좀 요란한가?

생각차는 있겠지만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둘러보는데 일주문에는 우람한 화강암 기둥양쪽으로 용이 휘감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들어가니 동명감로약수터가  있었고 옆으로 잘 꾸며진 구부러진 계단을 오르자 세출문이 있었다

세출문을 지나 오르니 주차장도 있고  그 앞에 현대식 건물사이에 붙어있는 불이문 밑으로 올려다보니 높이 오르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는데 여행길이라 지쳐 계단을 오를 자신이 없어 밑으로 내려와 둘러보기로 했다

모든 건축물들이 현대적이고 역사의 흔적이 거의 없어 현대에 지었구나라며 손 안의 사전을 찾아보니 이곳의 유래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수다사 라 하였는데 그 후로 이름이 바뀌어 가며 유지되었고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이 절에 들러 등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과거를 보면 좋은 결과가 있다 하여 등명사 라도 했지만 임진왜란때 강릉의 모든 사찰이 다 소실되었다고도 하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고 무슨 이유로인지 소실되어 500여 년 동안 사라졌다가 1950년  고경덕 스님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낙가사라 했으며

현재의 주지스님이 건물을 확장해 가며 등명낙가사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른다고ㅡ

불이문을 내려와 약사전 정자를 돌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약사전 앞마당 가운데 주변의 건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랜 세월을 입은 5층 석탑이 의연하게 서 있었는데 안내문을 보니 등명사가 있었을 때부터 존재했었다고ㅡ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등명낙가사는 500년의 긴 세월 그 이름도 사라졌다가 1950년부터 조금씩 중건해 가며 오늘에 이르는 사찰이기에 건축물에 세월의 깊이가 들어앉을 시간이 아직은 모자란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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