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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다릴께

2002년산 포도주를 열다

by 한명화
2002년 8월 24일
정말 맑고 아름다운 포도주
2002년산 포도주 탄생

발코니에 세워둔 진열장안에 오래된 커다란 술병? 이 두세 개 있다

늘 무심해서 있는지 없는지 했었다

어제는 진열장 안을 무심히 보다가 눈에 띈 먼지 앉은 커다란 유리 술병???

아! 그렇지,

맞아 현민엄마가 주신 선물이지ㅡ


그랬다

현민엄마는 큰딸 성은이, 둘째 현석이를 우리 원에 보냈는데 셋째를 임신했을 때 부끄럽고 또 그 시절에는 둘도 많다 했으니 어찌해야 하느냐며 유산시키러 병원 가기 전 상의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아이가 늦게 찾아온 것은 큰 복이고 신이 주신선물이라고 꼭 낳아서 키우면 복덩이가 될 거라며 축하해 주었다

현민엄마는 아이를 낳기로 했고 정말 셋째 현민이가 태어나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 손을 잡고 우리 원에 오며 저 병에 포도주를 담가 포장을 꽁꽁해서 가지고 왔었다

ㅡ현민이를 낳을 용기를 주어 고맙다며ㅡ

짝꿍은 날짜를 기록하고 발코니 진열장 안에 넣어 주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2025년 4월에 그 술병을 진열장에서 꺼냈다

병을 감쌌던 비닐이 세월을 못 이겨 바래고 삭았는데 그 위에 2002. 8. 24일이라는 날짜가 그날의 풍경을 손잡고 온다

커다란 유리병을 유모차에 싣고 두 눈이 초롱초롱한 귀엽고 총명해 보이는 현민이 손을 잡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40대 초의 젊은 엄마가 서 있다

그들에게 활짝 미소를 보내며 말한다

현민엄마! 애들도 시집장가는 보냈어?

지금은 어디서 잘 늙어가고 있지?

많이 보고 싶네

그리고 오늘 포도주를 수확하려고ㅡ라고


포도주병의 비닐을 뜯고 열리지 않는 병을 짝꿍에게 부탁해 열었다

우!ㅡㅡㅡ와! 이 향기, 이 빛깔

주전자에 담아 모아 두었던 빈 술병을 채운다

한병, 두병, 세병, 네 병

너무 맑고 붉은 포도주 빛에 끌려 한 모금 마셔 보니 와!ㅡ이래서 포도주를 오래 묵히나 보구나

현민엄마의 정성의 빛이구나

현민엄마의 사랑의 빛이구나

고맙고 감사함이 온몸을 채운다

여보! 네 병 채우고 남은 마지막 포도주 한잔씩 마셔 봅시다

작은 유리잔에 붉은 포도주 채워 건배를 한다

이 정성 이 사랑에 감사하며 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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