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박경리 토지문화관 박경리 뮤지엄에
가 보았다
통영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잠든 묘지까지 가 보았는데 그곳에서 만난 초로의 신사분은 친구가 생각이 나서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러 왔다고 했었다
그렇게 멋진 친구를 무덤에서도 만나는 분이 원주에서는 또 어떤 삶의 추억을 남겼을까?
문화관에서 그녀의 일상적인 작품의 자취를 둘러보고 뮤지엄으로 향했다
소나무가 멋스럽게 우거진 그녀의 집
해설사는 이곳은 안내원과 같이 돌아볼 수 있다며 함께 동행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의 집
거실, 주방, 안방 등 모든 곳에 그녀가 쓰던 손때 묻은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고 안방에는 그곳에 앉아 집필을 했다는 주인 잃은 전기매트가 책상 앞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장롱을 열었을 때 그녀가 직접 만들어 입었다는 옷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는데 저 옷들은 또 얼마나 주인을 그리워할까
물건들은 생전에 쓰던 그대로인데ㆍㆍㆍ
집안을 돌아보고 뒤뜰에 텃밭이어서 배추를 심어 김장을 했다는 그 밭도 주인 떠나니 그대로 풀밭이 되어 잡풀이 무성했고 아직도 반짝이는 장독대는 또 얼마나 주인의 손길을 그리워할까
또 바위를 벽삼아 만든 작은 창고가 문이 열려 들여다보니 자그마했는데 이곳에 농작물을 넣어 두었었구나 라는 ㅡ
작가의 삶의 장소를 돌아보고는 전시실로 향했다
제1 전시실이라는 안내를 읽으며 계단을 내려가니 작가님이 앉아 담소를 즐겼다는 투박한 나무의자와 탁자가 있어 그곳에 앉아 작가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전시실을 돌아보고 그녀의 영상을 보았는데
영상 속 그녀가 말했다
-원주에 오니 여기저기 이방송사 저 방송사 만나자는 곳도 많고 인터뷰 요청도 너무 많았는데 일절 응하지 않았더니 들려오는 소리가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려오더라
욕을 해도 응하지 않고 꿋꿋하게 글을 썼으니 토지를 탈고할 수 있었다
오늘은 토지를 끝냈기 때문에 나왔다고 했더니 그동안 오해가 다 풀리더라
여기저기 부르는 곳마다 다 돌아다니면 글은 언제 쓰겠느냐- 는 그녀의 말에 얼마나 힘들게 글쓰기에 전념을 했는지 안쓰러웠다
-젊어서 토지를 시작했는데 완결을 하고 나니 나는 머리가 희어진 할머니가 되었더라-는 독백 같은 그녀의 고백에 안쓰러워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다
토지는 1969년~1994년까지 26년 동안의 창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원고지 대략 4만여 장의 분량이니 다 끝내고 났더니 백발이 되어 있더라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원주의에서 그녀의 삶이 오로지 작품에 전념한 시간이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이곳에 와서 돌아보며 작가님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나도 모르게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작가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라고 멀리 하늘까지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전하고 있었다
토지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은 뮤지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