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딸과 일곱 살 아들...
아들-아들은 빵점
딸-딸은 100점
딸-아들은 200점짜리라고들 하던데.....
너무도 예쁜 둘째 녀석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것은 5살 때쯤
엄마, 아빠 소리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시작했던 같은데 5살이 넘도록 그 이상의 단어가 아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늦겠지,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7살 종윤이가 사용하는 단어는 4개
'엄마', '아빠', '안가', '아'
남들이 들으면 네 개의 단어이지만 부모가 듣기에는 그 네 개의 단어가 다시 수십 가지 단어로 바뀐다
주로 무언가 먹는다는 뜻의 '아'이지만 물을 요구할 때 사용하는 '아'와 제일 좋아하는 라면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아'는 다르다.
'아빠'라는 단어에도 수십 가지의 감정을 담아내곤 한다.
얼마 전 회사일로 만난 사람과 이야기하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자기 아이 이야기를 하다 그 사람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나에게 무책임하다고,,,,,,,
어릴 때부터 병원과 치료센터를 다니며 이것저것 다 해보아야 한다고.....
자신은 아이가 정상이 될 것이라고 아니 정상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그래서 힘들어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그랬다.
난 아이에게 7살이 될 때까지 정신과 병원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치료 수업도 일반적인 발달장애부모님들에 비하면 반에 반도 안될 만큼 해주지 않았다.
일반적인 부모 입장에서는 내가 아이의 장애를 기피하거나 방종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아이의 장애를 조급해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을까?
우리 둘째 녀석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장애-비장애통합 어린이집이다
일반 어린이집에 한 반 정도 따로 꾸려진 통합 어린이집이 아니라
전담 어린이집에 비장애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장애아이 30명에 비장애아이 20명 정도의 완전 통합형 어린이집이다. 한 반에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가 함께 살아가는 통합형 어린이집이다.
지금 10살인 누나도 이 어린이집을 다녔다.
비장애 아이였지만 자유롭게 뛰어놀고 외부 활동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좋아 이곳에 보냈다.
그리고 둘째도....
둘째를 이곳에 보낼 때 전혀 장애라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고 당연히 비장애아이의 몫으로 들어갔다.
3살의 종윤이는 누가 보아도 장난꾸러기에 활기가 넘치는 어린아이였다
특별히 장애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회복지 쪽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고
장애아이들을 만나고 장애부모님들을 만난 것은 이곳 어린이집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도 보았겠지만 내 주변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둘째를 보내고 몇 년 후 나도 비장애부모에서 장애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장애아이들과 장애부모님들을 보아서인지 아내와 난 큰 동요 없이 받아들였다.
아니 가슴 한 부분이 무너져 갔지만 아내에게 내색할 수 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장애아이로 인한 상처는 결국 부모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것을 보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같은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었다
혼자였다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며 혼자 고민했겠지만
다행히 내 주위에는 어린이집에서 만났던...
그리고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장애부모님 '이웃'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것은 내 아이만이 아니었고
나보다 10년, 20년 먼저 발달장애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그분들,
그리고 현재 20대 30대가 되어 있는 장애청년들을 보면서
책이나 인터넷이 아닌 진짜 정보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아닌 나의 답답함과 조급함을 해소하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내 아이가 행복해지고
내 아이가 자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돌봄과 성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카톡으로 보내주신 종윤이 손톱 깎는 사진...^^...
이 사진을 아내와 얼마나 오랫동안 미소 지으면 보았는지 모릅니다.
아직 대변을 가리지 못하지만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줍니다.
이렇게 스스로 손톱을 깎는 것처럼 우리 아이도 조금 늦지만 스스로의 필요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갈 것을..... 우리 가족뿐 아니라 아이의 주변 모두가 함께 믿고 기다려줍니다.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지만 숨기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더 많은 관심과 관계를 가지고 살게 할 거야...
우리 아이에게는 아빠 엄마만이 아닌 더 많은 관계가 필요해...
마을이라는 것이 마을공동체라는 것이 다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겠지만
나와 종윤이에게는 세상을 향한 통로이자 거친 세상에서 종윤이를 지켜줄 안전망이다.
다행히 마을에는 나와 종윤이만 있지는 않았다.
나처럼 장애아이를 키우는 가정들이 주변이 많이 있었다.
때로는 숨어 계시지 않고 오히려 한발 더 앞으로 나와 있는 분들도 계시고.....
함께 머물 수 있는 카페도 만들고
함께 치료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치료 협동조합도 만들고
장애청년들이 일할수 있는 일자리도 마을 안에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이건 너 개인이니 문제이니 열심히 치료하고 교육을 받아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되어야 해'
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장애의 문제를 개인이 혼자서가 아니라 마을 안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마을에는 '아제 어디가'라는 마을 아빠들과 아이들의 소풍 모임이 있습니다.
봄가을에는 소풍,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얼음썰매
특별할 것 없는 아빠와 아이들의 놀이이지만 참여하는 비장애 아이도 장애 아이도 그 날만큼은 아빠가 아닌 동네 삼촌이 되어 함께 돌보고 함께 어울립니다.
10월 첫 주 '아제 어디가'는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빠만 찾던 아이가 이제는 동네 형들과 함께 때로는 동네 아제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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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마을에는
현재 장애-비장애통합 어린이집, 발달장애 치료 협동조합, 발달장애주간보호센터. 발달장애자립지원센터가 만들어져 활동 중이고 내년 상반기 창립을 목표로 발달장애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 중입니다.
현재 마을 안의 다양한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발달장애청년은 23명으로 더 늘려갈 예정이며 발달장애청년들이 낮에는 마을에서 일하고 밤에는 함께 거주하며 마을살이를 하는 공동생활가정도 올여름 3호점을 오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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