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by 방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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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는 시간은 저녁 6시 30분.
저녁을 후다닥 먹고, 텅 빈 운동장 계단에 앉아
붉게 물드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나의 고3 루틴이었다.

엠피쓰리에 흘러나오는 6시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 곡을 들으면서.


멍때리기의 선수였던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선명한

그때 그 풍경속에서 잔잔하게 떠오르던 질문하나.


‘내 미래의 남편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가슴이 설렜고, 내가 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던, 그때.



“엄마, 나는 커서 뭐가 되면 좋을까?”
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뭐든 다 될 수 있어.”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건
사실은 내가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꼭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이 붙어야 할까.
내 나이, 고작 서른아홉인데.

그렇다면 지금 나는 여전히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인데.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또 생각해본다. 하고 싶은 것이 꼭 직업적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화분에 물을 주는 평온함이 좋고,

식물이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가 좋다.

고요한 밤에 책을 읽는 순간이 좋고 점심시간 틈을 내서 그리는 그림도 좋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지금 하고 있다면

무언가를 꼭 이루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