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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차의 계절

by 방토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물을 팔팔 끓인다.

주전자 뚜껑이 들썩들썩 하얀 김이 뿜어지면

불을 끄고 보리차 팩을 넣는다.


어렸을 적엔 엄마가 유리병에 넣어둔 볶은 보리 한 줌 손바닥에 탁탁 털어

주전자에 넣고 물을 팔팔 끓이셨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레시피로 보리차를 끓인다.

팔팔 끓으면 불을 끄고 주전자 물에 보리차팩을 퐁당 담가둔다.

시간이 지나면 보리의 색깔과 맛이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샛노란 색깔의 보리차다운 빛깔이 우러나올 때쯤 따끈한 온도가 된다.


옅은 김이 나는 끓인 보리차를 머그컵에 한 컵 부어서

두 손으로 쥐고 후후 불어 마신다.


여름에는 한 김 식혔다가 물통에 넣어 냉장고에 차갑게 넣어 마신다.

한겨울에도 남편과 우리 딸은 식후에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차가운 보리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보리가 좋다. 한여름에 푸릇푸릇한 청보리밭도 좋다.

보리차도 좋고 보리밥도 좋다. 보리밥의 톡톡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달고 찰기가 있는 밥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입안에서 흩어지는 보리밥알 하나하나 꼭꼭 씹어 먹는게 재밌다.


보리는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다.

그래서 추위를 무척 타는 체질인 나에게는 보리가 좋은 음식은 아니란다.

그래도 나는 보리가 좋다.


한 겨울에 고개를 내미는 보리의 싹을 보면 경이롭다.

언 땅을 뚫는 생명력에 감탄이 나온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한겨울 보리싹이 나면 보리싹을 밟아줘야 한단다.

그래야 뿌리가 얼지 않고 땅속 깊이 잘 내려서 잘 큰단다.

보리의 생명력. 이 정도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아무리 밝혀도 보란 듯이 쑥쑥자라

알알이 결실을 맺는 보리가 기특하다.


한여름 초록빛 바다 물결

일렁이는 보리가 참 좋다.


사분사분 눈이 내리는 지금

따끈하게 우러난 보리차가 생각난다.

퇴근이 무척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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