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기술
유치원 겨울방학 일주일
친정 부모님께 이틀 동안 아이를 부탁하게 됐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사그라들어서일까,
확실히 예전보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공기가 편안하다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문득 상처를 상기시키는 아빠의 기술.
비교.
어린 시절부터 늘 언니들과의 비교가 일상이었던 아빠 그리고 그 비교를 동조하는 엄마.
비교 뒤에 따라오는 웃음은 울그락불그락 굳어지는 내 표정을 감춰야만 하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나이 서른아홉에 아빠에게 듣는 비교는 이런 내용이다.
우리 남편은 나에게 늘 이발을 부탁한다.
벌써 2년 동안 남편의 머리를 두 달에 한 번꼴로 잘라주고 있다.
그러나 나의 미용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흥미가 없는 분야엔 너무나 무관심하고 의욕이 없는
나에겐 머리 자르기가 그중 하나이다.
남편은 대부분 모자를 쓰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쨌든 보이는 부분만 깔끔하면 된다며 어느 날 이발기를 주문해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매번 유튜브를 참고해서 차근차근 이발기로 머리를 잘랐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천지차이.
이제는 유튜브 없이 감으로 슥슥 이발기를 미는데
여전히 균일하지 않은 뒷머리와 군데군데 땜빵을 만들고 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
엄마아빠에게 이실직고하는 차원으로 남편의 이발이 이번에도 망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아빠에게 날아오는 화살.
너에겐 손재주가 없다, 둘째 언니는 두 아들의 머리를 매번 멋지게 잘라주는데 너는 정말 손재주가 없다.
나의 부족함을 얘기할 때는 꼭 누군가를 데려와 비교를 하며
나의 부족함을 확인사살시키는 우리 아빠.
예전 같으면 우리 엄마도 옆에서 거들텐데
못한다는 소리 좀 그만하라며. 아빠를 다그친다.
이것이 바로 마음 깊이 깨우친 사람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의 차이겠지.
언젠가 우리 집에 오신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는 네가 정리를 못해서 집이 개판일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부정적인 말이 앞서면 뒤에 오는 말은 칭찬이 될 수 없다.
디폴트값은 넌 원래 형편없는 사람.
사는 동안 내 존재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고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사람.
나중에서야 개똥벌레처럼 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 노랫말은 공감보다는 부러움과 씁쓸함으로 와닿는다.
개똥벌레로만 살아온 사람은 빛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별인 줄 알고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이 살아온 인생이 더 멋지게 보인다.
빛나는 별로 살아온 시간이 있었으니 개똥밭에 굴러도 다시 환하게 빛날 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러운 나는 개똥벌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