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아이 유치원 하원을 위해 다른 직원보다 두 시간 정도 이른 퇴근을 하는 나.
아이를 너무 늦게 유치원에 남게 하기 싫었고 그래서 네 시경 회사에서 퇴근을 해야 한다는 게
처음부터 제시한 필수 근무조건이었다.
그럼에도 4시 칼퇴는 눈치가 보여 이것저것 정리하고 회사를 나오는 시간은 4시 30분쯤.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딸아이반 마지막 친구가 하원버스를 타는 시간이 대략 5시,
다섯 시가 넘으면 대부분 하원을 하기에 혼자 남아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딸을 향해 최대한 속도를 낸다.
유치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빠른 걸음으로 향한다. 가장 두근거리는 시간.
딸아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걸어오면 하루 중 가장 밝은 미소로 껴안고 손을 잡는다.
그렇게 돌아가는 차 안에서 준비한 간식을 나눠먹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한다.
딸을 만나는 하원길은 내게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오늘은 하원을 하며 뜻밖의 경험을 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들어서며 운전을 하는데 주차장 벽면에 누군가 딱 붙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차장에선 속도를 천천히 내기에 벽에 가만히 서있는 까닭을 알 수 있었는데,
보행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걸을 때 착용하는 보조기구를 한 할머니가 위험한 주차장에서
가장 안전한 벽면에 차들을 피해 서계셨던 것이다.
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이따금씩 노인유치원 버스를 본다.
노인유치원. 나에겐 너무나 불편하고 거북한 이름.
어르신들은 노인이라는 이름도 싫어한다고 하는데 하필 노인에다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어르신쉼터나 어르신대학이라는 이름이 차라리 낫다 싶다.
주차장 벽면에 가만히 서계셨던 아니, 서계실 수밖에 없었던 그 할머니는 아마 노인유치원에 다니시는 분 같았다.
버스시간에 맞춰 내려오지 못한 자식을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는 당혹감과 경직된 표정으로 얼어계셨다.
지나가는 차들마다 할머니에게 눈길이 향했을 것이다. 몇 번의 눈길을 그렇게 받아내셨던 걸까.
집이 지척인데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무슨 사정인지 내려오지 않는 자식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하셨을까.
집으로 돌아온 뒤 그 할머니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부디 오랫동안 그곳에 서계시지 않으셨기를.
추운 겨울엔 하원길이 너무 춥지 않으시길. 자식이 미소 띤 표정으로 할머니 손을 부드럽게 잡고 도란도란 대화하며
따뜻한 온기가 있는 집으로 함께 들어갔기를.
늙는다는 것
건강을 잃는다는 것
내 몸의 일부가 짐스러워지는 것
언젠가 나의 부모에게도 나에게도 다가올 현실이기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