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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Oct 24. 2024

버리지 못하는 마음

비상구에 걸린 그림


나름대로 미니멀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최대한 빨리 집에서 내보내는 편이다.    


물건이 너저분하고 정돈이 안되어 있으면 마음이 영 불편하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유다. 은은한 조명등 하나켜고 소파에 앉아 깨끗하게 정돈된 집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루를 잘 마무리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필요없는 물건은 최대한 사지 않는편인데

매일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오는 그림과 만들기 작품들은 어찌할수가 없다.

그래서 세운 나만의 기준은 종이 접기나 만들기는 버릴 것,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짧은 편지는 모두 스크랩북에 저장하기. 지금이 아니면 남길수 없는소중한 흔적들이니까.


나름 미니멀을 실천하는 기준이 확고하다 생각하지만 간혹 시험에 들게 하는 물건이 있다.

딸의 작아진 팬티. 팬티만큼은 참 애매하다. 나눔 할 수도 없고 헌 옷수거함에 버릴 수도 없고 일회용 걸레로 사용하는 것도 내키지 않으니 일반쓰레기봉투에 버릴 수밖에 없다.      

딸의 통실통실한 엉덩이를 감싸주던 팬티들이라 그런가 작별이 유난히 서운하다.

한여름 팬티만 입고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던 딸의 모습이 지나가고 팬티를 내리고 혼자 변기에 앉아 힘주던 딸의 똥냄새가 피어오르고. 온갖 추억을 품은 고마운 팬티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일반쓰레기봉투행.

다른 쓰레기들과 엉켜있는 팬티를 보니 맘이 좋지 않았다. 팬티들을 떠나보면서 이런 순간이 처음이 아니었다는걸 깨달았다.

    

딸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손발톱을 자르던 날.

과자부스러기처럼 작고 작은 손발톱을 휴지에 싸서 버리려는데 시어머니가 물으셨다.

‘손발톱 쓰레기통에 버릴 거냐?’ 나의 대답은 ‘네? 네...’  

아이의 탯줄, 조리원에서 차고 있던 발찌, 배냇저고리, 손싸개, 머리핀 그 사이에 손톱, 발톱까지

고이 보관했어야 할까. 그 손발톱을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땐 이렇게 작았는데. 추억을 회상했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굳이!?




오늘 아침 출근길.

회사 건물 지하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오르는데

비상구에 올려져 있는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건물 미술학원에서 나온 물건일텐데 건물 관리인께서 버리지 않고 이렇게 빛과 어둠이 적절하게 스미는 벽면에 올려두셨다. 버리지 못한 마음 덕분에 쓰레기통에서 환생한  그림이 애틋하게 보였다.

이 그림을 버린 누군가가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나처럼 읊조리려나.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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