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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Nov 21. 2024

헤아리지 못한 마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양희은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라는 무대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영상에 달린 댓글에 눈이 갔는데 사람들의 공감 횟수가 굉장히 높았다. 

댓글의 정확한 글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누구나 자식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기에.

그러나 부모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굳세고 억척스러운 우리 엄마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그래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분이다. 

그런 엄마가 언젠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엄마 인생에서 가장 서글펐던 어느 날의 이야기다.

 

큰 언니와는 다섯 살 차이 둘째 언니와 나는 연년생으로 한 살 터울이다. 

찢어지게 가난 한 집안 살림에 옷이며 신발이며 변변하게 입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옛날 사진을 보면 북한에 사는 아이들 행색과 다를 바가 없다.) 

엄마가 아직 초등학교도 가기 전인 나와 언니를 데리고 새벽시장을 나갔을 때 일이었다고 한다. 

그날따라 둘째 언니가 시장에서 파는 신발이 갖고 싶다고 무척 떼를 썼던 모양이었다. 


마침 신발도 다 해져서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그 대쪽 같은 자존심을 굽히고 언니와 내 손을 잡고 새벽시장 근처에 사는 셋째 이모집에 갔다고 했다. 

궁핍한 살림만큼이나 동생에게 돈을 빌리는 게 우리 엄마에겐 정말 힘든 일이었을까.

물론 이모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엄마는 결국 돈을 빌리지 못했고 

눈물을 삼키고 이모집을 돌아 나오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기억도 못할 그때의 일을 엄마 입으로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스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땐 엄마에게 어색한 위로를 건네며 흘려지나 갔던 얘긴데 

그런데 얼마 전 이 신발사건이 불쑥 떠올랐다.  

    

여섯 살 딸아이의 겨울옷을 사기 위해 쇼핑몰로 가던 차 안이었다.

딸이 나에게 물었다.

“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어떤 옷 입었어?”     

이런 질문은 늘 당혹스럽다. 특별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글쎄.. 엄마는 이모들 입다가 작아진 옷을 입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옷이 없는데.”     

“엄마 속상했겠다. 예쁜 옷도 못 입고”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런 딸의 얘기를 들었다면 

나는 또 자기 연민에 분명 빠졌을 것이다.      

‘그렇지. 나는 참 불쌍하게 컸지. 나는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      


그때 문득 엄마의 눈가가 젖어있던 신발 사건이 불쑥 떠오른 건 왜일까.      

“아니야. 엄마한테 예쁜 옷 사주지 못해서 할머니 마음이 더 찢어지게 아프셨을 거야.”     


이제야 조금씩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간다. 

아이가 곧 일곱 살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아직 헤아리지 못한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남았을지 그 무수한 조각들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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