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결핍으로 자라 그런가?
소설도, 시도, 노래도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좋아했다.
사랑에 대한 책들도 여러 권 읽었다.
결혼 후에도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사랑이 좋은 사랑인가에 대해서 꽤 생각했다.
나는 본질을 찾는 걸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사랑의 본질을 찾으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특히 결혼 초 아내와 이런저런 갈등이 움틀 때마다 그런 고민들을 했었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을까?' 같은 의문도 흔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읽은 책들에서 사랑은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많은 책에서 진정한 사랑은 그저 주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받지 않아도 괜찮은가?'와 같은 의구심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의심치 않고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할 수가 있나?
짝사랑은 가슴 아픔 법인데 그런 아픈 사랑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내 머릿속 아내와 나 사이에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아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우울하고 화가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랑받지 않았을 리 없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응석받이 아기새처럼 입을 쩍 벌리고 계속해서 사랑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이니 아니니 하는 관념적인 것으로 아내와 나와의 관계를 채우고 싶지 않다.
보다 중요한 건 아내와 나와의 관계 그 자체가 됐다.
사랑은 내 머릿속에 있어서 아내가 들여다볼 수도, 쉽사리 바꿀 수도 없지만 관계는 서로 대화하고, 행동해서 바꿔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랑 노래를 듣고 사랑 이야기를 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담론으로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려던 숱한 시도들에 대해서는 안녕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