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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Mar 10. 2024

어린이들에게 시 쓰는 선생님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단원 생각과 느낌을 나누어요.


올해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습니다. 저는 초등 4학년 어느 학급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정규 교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린이들에게 저에 대한 소개, 학급 소개, 학교의 규칙과 학급에서 지킬 규칙 등등을 안내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중간중간 체육 활동 시간을 섞어서요.

서로를 알아가고, 여러 가지 규칙을 세우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틀 후에는 정규 교과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교과 학습을 통해서도 서로를 알아갈 수 있고, 어린이들의 특성에 따라 규칙은 수정될 수도 있으니까요.


국어 1단원에서는 시가 나왔습니다. 새 학기와 봄, 시는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1단원에 넣어둔 거겠죠. 어린이들은 시나 이야기를 읽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활동을 합니다. 생각과 느낌을 나누다 보면 서로의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원인이 서로의 '경험'이 달라서 그렇다는 것까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교과서 시 내용이 (주제넘게도) 별로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4학년 담임이 처음이었으므로 4학년 아이들은 이런 시를 좋아할까 싶어 그대로 읽혀봤지만 아이들 반응도 미적지근했습니다. 3차례나 읽혀보았는데도 그랬습니다. 한 번은 제가, 두 번은 아이들이 소리 내어 읽었지요.


"시가 별로 와닿지 않니?"

"네."

목소리 큰 어린이가 소리치긴 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어떻게 할지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럼 이 시로 바꿔 읽어볼까?"

컴퓨터 화면에 PPT 화면을 띄우고 동시를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 눈치 빠른 어린이가 물었습니다.


"이거 선생님이 쓴 시예요?"

"응, 맞아. 선생님이 전에 쓴 시야. 그럼 한 번 읽어볼까?"




악어 그림


뾰족뾰족 가시 그리고

초록색 물감 발라서 완성한

멋진 내 악어


짝꿍이 힐끔 보고는

깔깔 웃는다

그게 뭐냐?

괴물 그림이냐?


웃겨 정말

자기는 나무 그린대놓고

똥 그려놓고는


그전 시와 마찬가지로 제가 시를 먼저 읽고 그 후 어린이들에게 낭독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은 똥 얘기에 키득거리며 시를 읽습니다. 시를 읽고 모둠별로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활동을 했습니다.


정말 기분이 묘했습니다. 낮은 수준이지만 합평을 보게 되다니요. 사실은 제가 시켜놓고 말입니다.

 

아쉽게도 민망해서 어린이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듣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부끄러워서 듣지 못한 게 아니라 그저 그 순간 정신이 아득했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잘 들어보고 아이들 활동 피드백을 했어야 하는 건데 실수입니다.


활동이 다 끝난 후에 어린이들이 다른 시는 없는지 물어보고, 또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화산


엄마는 화산이다

화산이 폭발한다

용암이 넘실

불똥이 휘휘


그 앞에 선 작은 눈사람은

고래를 푹 숙이고

녹아내린다아

아아

.



"이거 화산은 엄마고, 눈사람이 우리다!"

어떤 어린이가 소리쳤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이해한 모양입니다.

그 와중에 다른 어린이는 불똥도 똥이라면서 선생님은 똥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 걸 발견하다니, 대단한데. "

'똥 좋아하는 건 너네면서.'

여하튼 어린이들에게 시 쓰는 선생님으로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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