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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언 Apr 29. 2023

5. 오각형의 밀실

픽션과 논픽션 사이

※이 글에는 폭력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김지은의 방은 천장이 오각형이었다. 직사각형 끝이 반듯이 잘려 나간 모양새였다. 김지은이 월경을 시작했던 그해, 부친은 옛집을 허물고 그 터에 양옥을 세웠다. 문짝과 문틀이 어긋나서 한 번 열어젖히면 튕겨서 벽을 때리곤 하던 합판 문이 아니라, 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견고하게 잘 잠기는 문이 달렸다. 완벽한 밀실이 될 수 있는 방이 생긴 것이다. 문은 신기한 힘을 가졌다고, 김지은은 생각했다. 문은 순식간에 한 세상을 열어 다른 세상과 섞이게도 하고, 단숨에 한 세상을 온전히 가둬버리게도 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기름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광광 울려대던, 그 방이 김지은은 좋았다. 소리에 민감해서 놀라기 일쑤였고, 조용한 공간을 좋아하는 김지은이었지만 그 방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적어도 그 안에서는 보일러의 소음인지 마음의 수런거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체로 느끼는 감각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마음보다는 육체로 숨는 것이 더 명백하고 편할 때가 있다. 김지은은 그것을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김지은이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육체의 감각은 ‘소리’였다. 하지만 소리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집에 있을 때의 적막이었다. 그 적막은 매우 공들여 견뎌야만 하는 성질의 적막이었다. 일종의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을 때를 견디듯. 적막의 외피는 너무 얇아서, 돌연 끓어오르는 부친의 분노에 금세 찢어지곤 했다. 그때, 보일러 소음이 김지은을 구하곤 했다. 


오각형 방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 방이 김지은 부모가 쓰는 방이었다. 그 방은 반듯한 직사각형이었다. 어쩌면 부친이 가장 자주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방에서 김지은 부친의 폭력의 형태는 정형화되어 있었다. 아내의 머리채를 붙잡고 네 개나 되는 벽 중 하필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외동딸의 방에 잇닿아 있는 벽에 짓찧는 것이었다. 


김지은이 두 번째로 도망치고 싶었던 감각은 ‘울림’이었다. 믿음직스러운 기름보일러가, 온몸을 태워 ‘울림’을 희석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의 울림을 김지은은 홀로 고스란히 버텨내야 했을 것이다. 부친의 폭력은 입체였다. 처음에는 울며불며 부모 방으로 쳐들어가 말려도 보고, 건넌방에 있는 조모에게 말려달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으나,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움을 청할 이웃집도 없었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그 시절에, ‘집안 일’에 ‘남’이 관여하는 건 있을 수 없었으니까. 김지은은 그 누구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어떤 분노는 스스로 사그라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꺼뜨릴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언젠가부터 심상치 않은 적막이 뒤덮을 기미가 보이면 김지은은 반대편 벽에 놓인 책상 아래로 들어가 두 귀를 막고 틀어박혔다. 벽의 울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습게도 정확히 숫자로 셀 수 있는 것이었다. 김지은은 공포에 떨면서도 그 숫자를 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김지은은 자신이 모친과 함께 맞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웅크린 채 폭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친과 책상 아래 웅크린 김지은이 하나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모친이 맞을 때 한 번도 같이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맞지 않았다. 


“그래도 느그 아빠가 니한테는 손 한 번 안 댔잖냐. 저 성격에.”


모친은 김지은이 부친을 원망할라치면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김지은은 새까만 오각기둥 공간 속에 갇힌 것 같았다. 그 오각기둥 공간은 정처 없이 허공을 떠돌았다. 부친의 ‘뒤집힌 눈’이 바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그 시간 동안 김지은은 그곳에 있되, 그곳에 없었다. 함께 맞았으되, 맞지 않았다. 존재했으되, 존재하지 않았다.


그 오각형 방에서 벗어나는 일은 맥이 빠지도록 쉬웠다. 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딸의 ‘학벌’을 자신의 ‘트로피’로 생각하는 김지은의 부친은 순순히 딸을 멀리 ‘유학’ 보내 주었다. 김지은은 해방감과 함께 진한 죄책감을 느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를 전장에 버려두고 혼자만 도망친 것 같았다. 우습게도 그때까지 김지은이 모친에게 느낀 감정은 ‘전우애’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녀도 구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학 진학 후, 갖은 핑계로 미루다가 여름방학에야 고향 집에 갔다. 김지은의 방은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부모의 방과 면한 벽 쪽으로 우두커니 들어앉은 낡은 장롱이, 김지은의 눈을 피하는 것만 같았다. 

‘너도, 알고 있구나.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김지은은 그 후로 그 방문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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