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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Jul 04. 2023

월화 2-2 나는 열 다섯 이후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어느 여름 해변에서 만난 소나기처럼

“엄마!”     


월화가 어린아이처럼 소리쳤다. 그때 나는 월화가 고작 열다섯밖에 안 된 아이라는 걸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패션쇼에서나 법한 성숙한 자태인 데다 무슨 꽃잎같이 순결한 얼굴이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월화냐!”     


그제야 사찰 집사가 반색하며 뒤를 돌아봤다.     


“야, 병신아. 창피하게 엄마를 왜 부르냐.”     


인화가 월화에게 핀잔을 주었다.


인화가 월화보다 상대적으로 키가 조금 작았다. 그러나 인화 역시 예뻤고 몸매가 부드러웠다.     


둘 다 허벅지며 어깨가 다 드러난 옷차림인데도 천박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오만한 지조와 고집을 지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멍청한 촌놈이 된 듯 어리벙벙해져그녀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마 입을 반쯤 벌리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떠냐!”     


월화는 나를 본 척도 안 하고 사택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엉덩이는 더욱 크게 좌우로 움직였고, 발걸음은 곧고 힘찼다. 월화의 등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은 흑진주처럼 빛났다.     


“안녕하세요.”     


인화가 나에게 인사를 하며 싱긋 웃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그제야 나는 얼른 인화를 바라보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사찰 집사는 헤벌쭉 입을 벌린 채 웃으면서 자기 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한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뒤돌아서 월화의 뒤를 따라갔다.


인화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유혹하는 듯 생긋 웃음 지은 뒤 손까지 살짝 흔들어 보이고 사찰집사 뒤를 따라갔다.   




나는 그들 가족이 모두 다 보이지 않게 된 뒤에서야 공터로 갔다. 그리고 승용차에서 여행용 트렁크를 꺼내 교회 옆 선교관으로 갔다.      


사찰집사에게도 여분의 열쇠가 있었겠지만 나는 서울서 출발할 때 하늘교회 시무실에 들러 열쇠를 받아왔었다.


아버지도 그 교회 장로이고 나 역시 고등부를 담당하는 교사여서 따로 확인  절차가 필요 없었다. 게다가 이사님이 지시를 해두었는지 율오리교회 주소와 사택 전화번호까지 건네받은 터였다.


선교관은 사찰 집사의 가족이 살고 있는 사택보다 위쪽에 있는 번듯한 양옥집이었다. 낡고 오래된 사택에 비하면 선교관은 부유층 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달려들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안방과 서재, 욕실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활짝 열어젖혔다.      


그제야 카펫이 깔려 있고 오래된 가죽 소파가 놓여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성화와 성구가 가구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재의 원목 책장엔 신학 서적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안방엔 혼자 쓰기엔 커 보이는 장롱과 킹사이즈의 더블 침대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거친 솜씨로 나무를 깎아 만든 이른바 수제 식탁이-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거지반을 차지한 주방은 집안의 구조에 비해 좁았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가구나 살림살이를 들여놓은 시점이 다르고 들여놓은 사람의 취향이 제각각 다른 만큼 불균형적이고 배치도 어색했다.


하지만 전체 구조는 도시의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다지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흙벽으로 둘러싸인 단칸방을 상상하던 나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선교사님 식사하러 오세요.”     


월화가 현관문을 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나를 사로잡던 월화의 눈빛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아이의 새까만 눈은 온 우주을 빨아들일 듯한 깊이 모를 심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슬펐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몸서리쳤다. 나에게 닥칠 어떤 운명을 감지했던 건 아니었을까!


"조금 있다가 갈게요. 먼저 가 있어요.”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색하게 떨렸다.

    

“선교사님은 젊고 잘 생겼네. 전에는 늙다리들만 왔었는데.......”     


월화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늙다리란 말이 불경스럽기는커녕 조크처럼 들렸다.


아이는 돌아가 있으라는 내 말도 무시하고 거실로 들어왔다. 내 눈치를 조금도 살피지 않았다. 나를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월화는 이미 많은 남자를 경험한 아이였다. 어른들이 차를 태워주고 용돈을 쥐여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면 기꺼이 몸을 내어주는 그런 아이였다. 고급 승용차든 트럭이든 가리지 않았다.  

    

거기에 비해 나는 여태껏 여자를 겪어보지 못한 남자였다. 다시 말하면 나는 욕망을 전혀 다룰 줄 모르는 서른 살이나 먹은 철부지였다. 그러니까 성적으로만 본다면 월화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경험도 많았다.     


첫날부터 월화는 내 앞에서 공작새처럼 꼬리를 쳤다. 그 아이가 물기가 남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길 땐 열두 살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감아서 정수리 위로 얹고, 똬리를 틀어서 입에 물고 있던 황금색 핀으로 고정시키면 스물 대 여섯쯤 되는 우아한 여인이 되었다. 이건 아니라는 듯 애써 올렸던 머리를 풀어 내리고 머리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 스무 살, 이슬 머금은 꽃잎처럼 싱그러워졌다.  


아아, 나는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긴장한 채 그 아이의 퍼포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파멸의 시간, 도적의 시간, 흙의 기운으로만 가동되는 시간 속으로 내던져졌던 것이다.   

    

월화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머리와 얼굴의 각도, 서 있는 위치, 조명 등을 이용해서 자신의 새로운 자태와 얼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내 앞에서 화보 촬영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황홀경에 사로잡힌 나는, 월화의 그 천성이 사악한지, 천박한지, 고상한지, 순박한지, 아니면 교활한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억이 환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진실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파멸의 시작이었던 건 분명하다.   


“빨리 오세요.”


월화는 마침내 자기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갑자기 나가버렸다.    

  

나는 목에 걸치고 있던 젖은 수건을 내려놓고 홀린 듯 월화의 뒤를 따라갔다.




“어제, 월화가 선교사님 침대에서 잤어요.”     


큰 신발을 끌면서 선교관으로 오고 있던 인화가 걸음을 멈추고 일러바쳤다.     


“이년아, 너도 선교관에서 샤워하고........ 어디서 잤더라. 내 옆에서 잤잖아.”    

 

월화가 성큼성큼 걸어서 인화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인화가 키득키득 웃었지만 두 자매로부터 환영받는 엉뚱한 느낌이 들었다.      

 

사택의 거실과 주방은 불결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반쯤 입을 벌린 누런 쌀자루와 함부로 벗어서 소파 위에 던져놓은 수건과 옷가지들은 거실을 너저분하게 만드는데 한몫 거들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놓여 있는 더러운 걸레는 불결한 위생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에 튄 음식 자국들과 찌그러지고 때가 양념 그릇들은 한눈에 보아도 비위생적이었다.  

    

국을 푸고 밥을 푸는 동안에도 월화와 인화는 티격태격 다투었다. 사찰 집사는 딸들의 장난을 보는 것이 마냥 즐거운지 동굴 같은 입을 벌리고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마침 밝은 달이 검은 먹구름 사이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좀 이르다 싶은 찌는 더위와 먹장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산골의 그런 날씨가 긴장감을 주기는 했지만 실은 날씨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두 소녀의 소란스러움이 싫기는커녕 마치 혼자서 떠나온 먼 여행지에서 여장을 풀고 금방 사귄 민박집 딸들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슬픔과 번뇌가 있던 자리에 여정의 쓸쓸함 같은 것이 들어찼다. 가난하고 버릇없고 무례한 그러면서도 조금 모자란 듯한 이들 모녀는 물론 비위생적인 사택이 나는 싫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수저와 식기만큼은 별도로 보관해 온 듯 비교적 새것이었다. 설령 내 몫의 밥그릇과 수저가 사찰 집사 앞에 놓인 것처럼 찌그러진 양재기와 무덤 속에서 건져 올린 듯한 놋숟가락이었어도 나는 그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걸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찰 집사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식탁 아래에서 누군가의 발이 내 정강이를 툭 건드렸다. 일부러 그러는 듯했다. 하지만 월화인지 인화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좁은 식탁 밑에서 네 사람의 발이 서로 부딪힐 수 있을 거라고 간단히 결론 내렸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발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기도합시다.”     


월화는 이미 수저를 든 뒤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낸 사람처럼 말했다. 어쨌거나 이곳은 교회에 속한 곳이었고 내 평판이 이사님 귀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는 내 오랜 습관이었다.


나는 두 손을 식탁 위로 올려놓고 깍지 끼면서 눈동자만 돌려서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월화는 수저를 입에 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인화와 사찰 집사는 고개를 숙였다.     

 

“전능하신 하나님.......”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발이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발이 너무 노골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벌려서 피해버렸다.


발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면서 월화가 식탁 앞으로 손을 짚었다. 월화가 나를 바라보며 킥킥 웃음을 삼켰다.      


“미친년아 가만히 있어.”


인화가 중얼거렸다.      


두 자매가 영화에서 너무 흔하게 우려먹는 장면을 흉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와 다른 것이 있다면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술집이 아니라 도저히 그런 장면을 상상하기 힘든, 아니 그런 장면이 연출되어서는 안 되는 산골 오지의 교회 사택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도 나이 어린 소녀가 방금 막 파견되어 온 선교사-실은 선교사가 아니라 파혼 일보 직전에 쫓겨난 불운한 남자-에게 한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월화가 큰소리로 웃고 있어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자매님께서 기도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나는 월화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들은 어쨌거나 교회 사택에 살고 있었으니까.      


월화에게 기도를 시킨 것은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책임을 지워 주어서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월화는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화의 음성이 이상했다. 눈을 뜨고 월화를 바라봤다. 월화는 빠르게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수저로 밥을 퍼서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교사님한테 쫓겨나면 어쩌려고........”     


월화를 바라보던 사찰 집사가 맥없이 백치처럼 흐흐거렸다.     


“저 미친년 때문에 쫓겨나면 엄마는 산으로 가서 죽어야지 뭐.”     


인화가 낮은 소리로 비웃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이 미친 듯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나도 어이없어하면서 함께 웃었다. 내가 웃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마구 웃고 나서 기도 따위는 생략하고 격식도 체면도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밥그릇이 반쯤 비어 가고 있을 때였다.      


“국 좀 더 줄까, 응.”     


월화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나는 누구한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이년아 선교사님한테 반말하면 어떡하냐.”     


인화가 월화를 노려봤다.       


“지랄마. 인화지, 도화지, 습자지, 긴자지, 미친년아. 된장 시래깃국을 머리에 붓기 전에 밥이나 처먹어.”     


월화의 말에 사찰 집사가 헤벌쭉 입을 벌렸다.  

   

“뭐, 월화수목금토일. 미친년아. 밥이나 처먹어!”     


인화는 헤헤헤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러면 똥이나 처먹을래.”     


“뭐어, 또옹......”     


웃음 띤 얼굴로 월화를 흘겨보던 인화가 식탁을 치면서 폭소를 터트렸다.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에 휘말려 나도 헤벌쭉 웃었다.  



    

내가 언제 분노해 본 적이 있기나 했나 싶었을 때 문득 수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폭력을 휘두르던 내 모습이……


정말 창피하고 또 부끄러워서 이것만은 숨기고 싶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미와 잠자리를 가졌다. 약혼 후였고 그녀의 아파트에서였다.


수미는 한 박물관의 큐레이터였고 부모를 잘 둔 덕에 괜찮은 아파트에서 독립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내 키스를 받아들인 후 나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나는 굶주린 돼지새끼처럼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다가 아래로 내려가 팬티를 내리고 축축하게 젖은 그곳에 코를 박았다. 그리고 꿀처럼 달게 핥았다.   


수미는 거부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친 듯한 애무에 비해 사정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꼈다. 이내 다시 시도했지만 두 번째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세 번, 네 번, 날이 밝아오기 전까지 계속하는 동안 수미는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신음소리를 내거나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 다시 하라고 부추겼고 나는 새벽까지 반복해서 했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침 일찍 아파트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거기가 얼얼하고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수미와 치른 첫 경험이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수미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총각인데 엄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수미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과 분노가 느껴졌다. 그리고 실망과 분노는 점차 자라서 독소처럼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날 그러니까 내가 수미를 대로변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내동댕이 치고 발길질을 한 것도 그 독소가 퍼진 탓이었다.


그날 그 휘황찬란한 대로변 골목에서 나는 수치스럽게도 수미에게 처녀성에 대해 따져 물었다. 물론 그걸 물으려 골목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수미가 나를 이끌고 들어갔고 나는 수미의 의도를 알아채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였다. 나는 느닷없이 물었다.


첫 경험누구야? 사랑했었어? 


나는 진심으로 수미의 처녀성을 가져간 남자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총각이었던 게 억울했고 수미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해서 환장할 것만 같았다.


수미는 내 질문에 당황하는 듯하다가 여태껏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하긴 그날 하는 거 보니까 처음인 것 같긴 하더라,라고 되받아쳤다.


나는 심한 모멸감으로 부르르 떨었다.




 “월화가 열 살 때 뭘 먹었는지 아세요?”     


인화가 나를 보고 물었다.     


“시끄러 이 똥물에 튀길 년아.”     


어느새 일어나서 내 국그릇에 국을 가득 담아 온 월화가 말했다. 월화는 국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고 내 옆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의자가 마룻바닥에 끌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인화는 월화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의자에서 나는 소리 때문인지 또다시 배를 잡고 웃어젖혔다.     


“내가 말해 줄게.”     


월화가 내 오른쪽 팔뚝을 잡아당겼다. 나는 코앞으로 다가온 월화의 그윽한 눈빛에 사로잡혔다.


이상한 일이었다. 월화가 무슨 짓을 하든 예쁘게만 보였다.


월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발적인 표정이었다. 아니 도발적으로 보였던 건지 모른다. 입술은 붉고 투명했으며 피부는 우유를 부어놓은 것처럼 희고 고왔다.  


화장을 지운 얼굴이 더 맑았다. 그제야 나는 그 아이들의 나이를 의심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설마 미성년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뭘 먹었지!”     


그들의 장난에 익숙해진 내가 물었다.   

  

“뭘 먹긴. 똥이지.”     


인화가 말을 가로채놓고 의자 뒤로 고개를 젖힌 채 자지러졌다.     


“인화지, 도화지, 미친년아. 넌 가만히 있어라.”     


월화가 말했다. 사찰 집사는 가끔 월화와 인화를 번갈아 보면서 웃음을 짓거나 김치를 펴서 얹은 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사찰 집사는 젓가락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 습성이 있었다.


유난히 이빨이 하얀 사찰 집사를 닮았던 건지 월화의 이빨도 말할 때마다 하얗게 빛났다.      


“수면제 한 병을 다 털어먹었어.”     


월화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안경을 맞춰주지 않아서 아버지가 먹던 수면제를 한입에 털어 넣었어. 음, 사실은 우리 식구들 모두 미쳤어. 정신병원 의사가 그랬어. 우리 식구들은 모두 조금씩 미친 거라고.”     


월화가 미묘하게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이년아, 난 안 미쳤어. 너하고 엄마만 미쳤지.”     


인화가 입가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인화지, 이년아 너도 미쳤고 오빠도 미쳤어. 의사가 그랬어.”     


월화가 말했다.     


“오빠한테 일러야지.”     


인화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화나 월화는 오빠가 집에 들어오는 기척이 있으면 속옷만 입은 채로 도망을 쳤었다. 두 자매는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와 마주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어렸을 때 오빠가 하도 때려서 그렇게 된 것이라 했다.      


“일러라.”     


말하면서 월화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통보하듯 소리쳤다.


"나는 선교관에 숨어 있으면 되지."



 


읽고 계시는 작가님들과 읽지는 못해도 좋아요로 저를 격려해주시는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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