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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Sep 30. 2022

[단편소설] 배꼽 앓이

혜야, 그만 일어나. 도대체 언제까지 엄마가 깨워줘야 하니.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지혜에게 아침밥을 차려 줄 시간은 없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는지 모른다.


아직 시간이 남았단 말이야.


지혜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시간이 남긴 뭐가 남아. 엄마 없는 애처럼 눈곱만 떼고 학교 갈거니.  


나는 한 손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 지혜가 덮고 있는 이불을 확 끌어당긴다.


제법 처녀티가 나기 시작하는 딸의 몸뚱이가 드러난다.


나한테 엄마가 있기나 해.


지혜가 못 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럼 난 뭐니? 너만 아니면........


나만 아니면 아빠 버리고 새 시집가고 싶지.


왜? 그러면 안 되니!


칫 마녀!


지혜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저 싸가지 하고는. 얼른 일어나서 밥 챙겨먹고 학교가. 머리도 감고. 깨끗이 씻고 다녀. 물칠만하지 말고. 냄새나면 파리만 꼬여. 더럽다고 친구들한테 왕따 당하면 엄마도 어떻게 못해줘.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엄마 노릇이라는 것도 잔소리로만 한다.


엄만 진짜 깨끗이 씻어!


지혜가 벌떡 일어나 내 앞을 가로막고 다가선다.


그럼 너 같은 줄 아니.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남편이 교도소에 들어간 뒤부터 일 것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탓인지, 감당하기 힘든 피로감 탓인지 사소한 일에도 지혜에게 신경질을 부려왔다. 그전에도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혜에게 잘하고싶다.


배꼽은?


느닷없는 지혜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배꼽을 씻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얘가 지금 뭐 하는 거니.


어느 틈에 지혜의 손가락이 내 배꼽을 파고든다.


냄새.


지혜가 손가락을 코에 대고 인상을 찌푸린다. 나는 지혜의 손가락을 당겨서 냄새를 맡는다. 내 배꼽 냄새를.


고린내가 난다.


엄만 어릴때 배꼽앓이를 많이 해서 그래. 다른사람보다 에민하다고. 씻을 때도 덧날까봐 조심스럽고. 그리고 너도 배꼽은 너무 후벼 파면 안 돼.


나는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우리 반 애들도 모두 냄새가 나.


얄밉게도 나를 위로하려는 표정이다.


더럽게 그런 장난을 왜 하니.


나는 지혜를 욕실로 밀어 넣는다.


엄마, 나도 배꼽 피어싱 하면 안 될까.


지혜가 돌아보며 어색한 애교를 부린다.


안 돼.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그딴 짓 하기만 해 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지. 니가 공부 안 하고 엉뚱한 짓 하면 그땐 엄마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친엄마 맞아. 툭하면 딸한테 공갈협박이나 하고.


지혜는 투덜거리면서 욕실 문을 닫는다.


나는 욕실 쪽을 흘끔거리며 스킨을 흠뻑 적신 화장솜으로 배꼽을 여러 번 닦아낸다.


배꼽 주위가 금세 벌겋게 부어오른다. 전에도 종종 피곤하고 지치면 고름이 나고 붓던 배꼽이다.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멀쩡하던 배꼽이 자꾸 가렵다.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해서 '배꼽'을 검색한다.


배꼽이 상반신인지 하반신인지 다투는 질문 아래 여러 가지 답변이 달려 있다.


배꼽이 팬티 위에 있으니까 상반신이고 배꼽 아래 일은 송사하지 말라는 걸로 봐서 하반신이라는 주장도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양을 섭취하는 쪽이 상반신이고 배출하는 쪽이 하반신이라면 태아에게 섭취와 배출을 담당하던 곳이니 중심이라고 하는 설명도 눈에 띈다.


다른 글을 읽으려는데  전화가 온다.


첫 번째 울리는 전화벨은 항상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첫 번째 전화가 진상 고객이면 그날 하루 내내 애를 먹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야이, 나쁜 년아. 너,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는 거지.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는 욕설.


흥분한 고객은 말보다 욕이 앞선다.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 될 것이다.


내가 다 늙어서 그딴 과자 얻어먹으려고 비싼 전화 요금 들여가면서 너한테 전화질 하고 있는 줄 알아, 이 더러운 간나야.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는 망할 영감탱이에겐 딴청을 부리는 수밖에 다른 대책이 없다.


일단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내려놓고 침착하게 두 손을 모은 뒤에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누가 보면 기도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일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가혹한 삶을 견디는 한 방법이다.




며칠 전 노인이 전화했을 때 내가 새겨들었어야 하는 말은 ‘다른 것은 필요 없으니 아이비만 보내 주면 돼’인데 나는 노인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여분으로 남은 다른 과자를 모아서 보냈다.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양으로 따지자면 부서진 아이비에 비해 스무 배가 넘었다. 그 정도면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은 내 실수라면 실수였다.


대개의 경우 많이만 보내주면 더 이상 군말이 없는데 당뇨를 앓고 있는 노인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설탕 과자 한 가지뿐이었던 것이다.  


노인이 당뇨병을 앓고 있을 줄이야. 건강진단서를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 많은 과자가 노인을 화나게 할 수도 있는 건가! 손자도 없나? 손자가 없음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나누는 기쁨을 일도 모르는 무식한 노인 같으니.


고객님 죄송합니다.


나는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얼른 수화기를 든다.


고객이 또다시 험담이나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하면 배꼽앓이에 대해 검색해야지.


그러나 아쉽게도 벌써 화가 가라앉아 있다. 경험에 의하면 흥분을 잘하는 고객은 감동도 잘한다.


많이 속상하셨죠.


고객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내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고객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제가 감히 어떻게 고객님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착오가 있었던 겁니다. 잘 못한 점이 있으면 용서하시고 질책과 사랑을 계속해서 보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깐죽거리는 고객보다 다혈질 고객이 다루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고객을 상대하다가 감정에 휘말려 들면 자칫 시말서를 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느 때나 그저 회사의 하드웨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화를 끊고 고객이 보내온 메일을 읽는다. 언제 왔는지 실장님이 눈을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는 것 같아 배꼽앓이 검색은 일단 포기. 


고객의 메일도 공갈협박이 뒤섞인 욕투성이 이기는 마찬가지다. 오늘의 운세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다.  


하루 종일 욕을 배 터지게 먹겠지.


금전적 보상을 노리는 지능적인 메일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현금 보상은 내 권한 밖이어서 가능한 과자를 보내주겠다고 설득한다.  


그러다 보니 상습적으로 과자를 요구하는 고객도 생겨난다.


나는 진위를 가리기보다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을 택한다. 상습 고객은 상습적으로 음해를 가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필코 금전 보상을 원하거나 브랜드와 매출에 치명적일 수 있는 테러로 의심되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메일을 대강 훑어보고 나서 주위 눈치를 살핀다. 모두들 성난 고객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실장님도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나는 Alt+Tab을 눌러 내가 검색하던 페이지로 이동한다.


검색어를 다시 치려는데 기사가 눈길을 끈다.


배꼽이 없는 파충류들은 대부분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파충류의 어미가 알을 낳고 가버리면 새끼들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역경과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알들은 깨어나기도 전에 먹이가 되고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해도 대부분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포유류 즉 배꼽을 가진 짐승은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돌본다는 게 정설이다.


인간은 포유류처럼 배꼽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는 파충류나 포유류가 가지지 못한 신피질도 가지고 있다.


인간이 포유류와 달리 새끼를 양육하는데 그치지 않고 혈통과 혈족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어떤 인간들은 배꼽 없는 짐승처럼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까지 읽었는데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곁눈으로 보인다. Alt+Tab을 눌러 고객상담실로 잽싸게 이동한다.


이럴 땐 사시가 차라리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0.1초 스친다. 하지만 절대로 사시가 되고 싶진 않다.


엉뚱하게도 나는 사시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으로 머리를 부르르 떤다.




어떤 파충류처럼 내 어미에겐 배꼽이 없었나 보다. 나는 어느 추운 겨울날 강보에 싸인 채 나를 키워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참새방앗간 앞에 버려졌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명문대에 합격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고모가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알 것은 알아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꺼낸 이야기가 내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고모는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을 거라고 운을 뗐지만 나는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믿기지 않아서 유전자 검사까지 해봤지만 내가 버려진 아기라는 걸 확인하는 꼴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배꼽 가려움증을 촉발시킨 지혜의 손가락 하나를 원망하며  나는 다시 Alt+Tab을 눌러 금지된  구역으로 이동한다.


검색창에 배꼽앓이를 치자 수많은 글들이 쏟아진다.


나를 키워준 참새방앗간 어머니 말에 의하면 한 살배기 나는 배꼽이 아물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꽤 오랫동안 곪아서 냄새를 풍기다가 겨우 나은 뒤로도 잊을 만하면 다시 발병해서 어머니 속을 무던히 썩였다고 했다.


검색한 글들 중 관심 가는 정보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배꼽앓이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 그것이 왜 위안이 되는지.




오후에는 폭주하는 전화로 몸살을 앓는다. 가끔 자기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고객과 대거리를 하다가 녹취록까지 들춰가며 조사를 받는 일도 오후 서너 시 이후에 주로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전화의 징크스를 무사히 극복하고 오후의 강을 무탈하게 건넌다. 


퇴근 무렵 물품대장 위에 얹어 놓았던 휴대전화가 요동친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다.


실장님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모니터에 시선을  붙박고 있다. 바둑이라도 두는 모양이다.


언제나 심드렁한 저 얼굴도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만큼은 웃음 주름이 진다.


나는 한쪽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고 휴대전화의 폴더를 연다.


한편 뒤통수는 뒤통수대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엄마, 오늘 몇 시 퇴근해?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질문인 데다 지혜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뻔히 알면서 왜 물어!


나는 손가락으로 음량 버튼을 눌러 잽싸게 지혜의 목소리를 줄인다.


혹시 일찍 들어올까 봐 그러지.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일찍 들어가.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인다.


엄마보단 일찍 들어갈 테니 걱정 마.


지혜는 당장 전화를 끊을 기세다.


휴대전화기 저편에서 자동차 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엄마 노릇을 하려면 뭐라고 한마디 잔소리를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안난다.


내가 머뭇대는 사이 전화가 끊어진다.


슬쩍 뒤돌아보면서 휴대전화의 폴더를 접고 동시에 의자를 당겨 앉으며 아프도록 배꼽을 긁는다. 


고통스러운 쾌감이 느껴진다.  



퇴근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착한 대형 할인매장에서도 웃음은 씨이오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다른 게 있다면 제과회사의 고객상담실에서는 목소리로 웃음을 흘려보내야 하지만 여기서는 소리는 내지 않고 보여주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정으로만 짓는 웃음이 소리로 내는 웃음보다 열 배는 힘들다. 화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웃지 않는다고 누가 뭐랄까 생각하다간 큰코다친다.


고객이 불편사항 신고함에 아무개 캐셔는 왜 그렇게 똥 씹은 얼굴이냐, 물건 사 가면서도 눈치 보이고 불쾌하더라.


회장님 위에 고객님이시다.


고객님께서 이렇게 투서하는 날이면 또 시말서 거리다. 아니 임시직인 나한테는 해고 사유가 된다.


캐셔하겠다고 줄 선 여자들이 많으니 나 같은 건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입술을 하현으로 만들어 본다.


보조개가 들어간 얼굴에 피로가 두 겹이다. 게다가 배꼽이 자꾸 가렵고 쓰라리다.


전표와 금고를 챙겨 나오면서도 옷 위로 배꼽을 문지른다. 그러나 내가 입은 유니폼은 조심성과 겸손과 상냥함과 같은, 내가 갖추지 못한 온갖 미덕을 강요한다. 아무리 대형마트 제복이라고 해도 동경의 대상이던 제복이 인간성을 억압하는 족쇄라니.


길게 줄을 선 고객들에게 웃음 이외도 내가 보여줘야 하는 것은 신속함인데 빈번하게 동작이 느려지거나 끊어진다. 참을 수 없는 배꼽 가려움증 때문이다. 참으려니 머리가 쭈뼛 서면서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난다.


나는 이번에도 바코드를 신속하게 찾지 못하고 냉동볶음밥을 들고 이리저리 살핀다.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산만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재빨리 한 손으로 배꼽 위를 슬쩍 문지른다. 그 사이 고객이 바코드를 찾아서 스캐너로 쏜다. 삐, 스캐너가 통과를 허락한다.


뭐 하는 거예요.


줄에 서 있던 한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따진다. 나는 못 들은 척 양념 주꾸미가 담긴 봉지에 스캐너를 가져다 댄다. 이유 없이 또 스캐너가 먹지 않는다. 태연한 척 웃음을 지으려고 하지만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손은 저절로 배꼽 위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가려움증을 부추길 뿐이다.


나는 계산대 밑을 살피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고 배꼽 위를 힘껏 긁는다. 미치도록 시원하고 아프지만 그때뿐이다. 허리를 펴고 태연한 척해보지만 나는 여전히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한다.


바빠 죽겠는데,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신경질을 부리던 여자가 먼저 줄을 이탈한다. 뒤이어 두어 명이 더 빠져나가지만 나머지 여자들은 끈질기게 줄을 지키고 있다.


줄이 길어지고 고객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이 사실이 사무실에까지 알려졌나 보다. 아직 교대시간이 되려면 멀었지만 대리가 와서 교대해준다.


고객들 앞이라 말로는 어디 아프냐고 묻지만 웃음 뒤에 짜증이 감추어져 있다. 아무튼 주저앉아 울고 싶었던 나에게는 다행이다.


나는 허겁지겁 탈의실로 뛰어 들어간다. 거울에 비친 배꼽은 벌써 진물이 나고 벌겋게 부어올라 있다. 나는 부기로 좁아진 배꼽에 손가락을 넣었다 뺀다. 여전히 더러운 냄새가 난다.


나는 너무 어렸던 탓에 어머니가 종종 들려주곤 하던 배꼽앓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을 리 없는 어느 겨울날 방앗간 앞에 버려진 내 모습은 마치 목격이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다.


강보에 싸여 울고 있는 한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수치스럽고 분노가 느껴진다. 마치 내 혈관에 파충류의 피가 돌고 있는 것처럼 내 존재가 서늘하다.





배꼽앓이 덕분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일찍 들어왔지만 역시나 원룸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하다.


평소 자정이 가까워 퇴근하는 나는 원룸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었다. 사람이 오히려 차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할 정도로 원룸 주차장은 언제나 자동차로 가득찼던 것이다.


얼마큼 일찍 들어와야 주차장 안에 번듯하게 차를 세워놓을 수 있을까. 나는 골목을 서너 바퀴나 돌다가 집 근처 골목에 차를 세워놓는다.


현관 앞에 당도해서 곁눈으로 슬쩍 우편함을 확인한다.


남편이 일주일에 한두 통씩 잊지 않고 보내는 편지가 이번 주 들어 아직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지혜가 답장을 게을리해서 의욕을 잃었을지 모를 일이다.


재판이 진행 중일 때 나는 결근을 해가면서까지 면회를 다녔고 하루가 멀다고 편지를 썼다. 평소 말수도 없고 욕심도 부릴 줄 모르던 사람이 회사 돈을 빼내서 주식 투자로 날려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남편이 무슨 모함이라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이가 순순히 모든 것을 인정했다.


남편이 집행유예로 나오기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살던 집까지 회사에 다 내어줬다. 그러나 남편이 손댄 회사 돈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남편은 결국 실형을 받았다.


형이 확정되고 나자 남편이 행방불명이라도 된 것처럼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야간에 캐셔로 일하면서부터는 몇 달 동안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키를 밀어 넣고 우측으로 돌린다. 철컥, 열쇠가 변덕을 부린다. 좌우로 돌리고 뺐다가 다시 꽂아보기를 수없이 해도 열리지 않아 나를 문 앞에 주저앉게 만들곤 하던 문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단 한 번에 열린다.


나는 가볍게 문을 열어젖힌다. 뜻밖에도 좁은 방에 아이들이 셋이나 앉아 있다. 웃고는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색하기만 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지혜가 겸연쩍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까 방안에 연기가 흘러 다니는 것 같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담배 피워?


나는 들고 있던 과자 상자를 팽개치듯 바닥에 던져놓고 아이들 앞으로 다가선다. 둘 다 모르는 아이다.


아이들은 금세 불량한 표정을 한다. 한 아이의 얼굴에 빈정거림이 가득하다. 반항적이고 건방지다. 다른 아이는 오히려 비웃고 있다. 그러나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다. 모두들 치마가 말려 올라가서 속옷이 보인다.


나는 책상 밑으로 감추어 놓은 재떨이를 집어 개수대에 던져 넣고 수도꼭지를 튼다.


나가.


나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그제야 아이들은 주섬주섬 가방과 소지품을 챙겨서 일어난다. 지혜가 따라나선다.


나는 지혜의 팔을 잡아당겨 침대에 밀쳐버린다.


엄마.


지혜가 고함친다.


아줌마, 왜 그러세요. 우리가 뭐 나쁜 짓 했어요. 요즘은 다 피운다고요.


불량기 가득한 아이가 뒤돌아서서 대든다.


다시는 우리 집 오지 마.


나는 아이들을 밀어내다시피 한다.


재수 없어. 가자.


문 밖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계단으로 내려간다.

  



오늘 하루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 주세요.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서 그래요.  


전화를 받은 대리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딸과 대화가, 아니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절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가 쓰러지셨어요. 딱 하루만 바꿔주세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죄송합니다.


나보다 어린 대리한테 사정하는 동안 지혜의 삐친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더 이상 묻지도 야단치지도 않았는데 요 며칠 지혜는 나를 피하고 멀리 했다. 내가 자진해서 전에 없이 너그럽게 용돈을 내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용돈은 날름날름 잘도 가져다 쓰면서 왜 말은 한마디도 안 하니. 불량한 아이들하고 어울려 담배 피우는 것까지 모른 척해야 해. 엄마도 다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어.


나도 버려.


이까짓 좁아터진 원룸에서 사는 게 뭐 대단하다고 생색이야.


생색. 계집애가 뭘 잘했다고 엄마한테 싸가지 없이 굴어.


오늘 아침 결국 지혜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앞으론 절대 안 됩니다. 캐셔하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알고 있죠.


대리는 마치 큰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마지못해 결근을 허락한다.


나는 할인매장으로 출근하는 대신 맞은편 재래시장으로 가서 장을 본다. 해가 있는 시간에 거리를 활보하려니 왠지 남편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어차피 접견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 그런데도 남편에게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은 오래전에 접견을 포기했다. 재판하는 동안에는 낮 직장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남편이 다니던 회사 사람들을 만나 사정도 하고 접견도 가끔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하필이면 이 지방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서 평일이 아니면 접견을 할 수가 없는 것이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주말과 공휴일엔 타 지역에서 사는 사람만 접견을 할 수 있다. 법인지, 규칙인지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제법 묵직해진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온몸이 땀으로 끈적끈적하다. 늘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공간에서만 갇혀 지내다 보니 느끼지 못했는데 밖을 돌아다니다보니까 후텁지근하고 불쾌한 무더위가 실감 난다.


나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을 강으로 켜고 옷을 벗어던진다. 가려움증은 좀 가라앉았지만 배꼽에서 나는 냄새는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소독약을 적신 면봉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닦아내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 참새방앗간 어머니가 말한 갓난아기 때 배꼽앓이가 이런 거였을까.




지혜가 돌아오려면 꽤 시간이 남아 있다. 오랜만에 남편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 진다.


지혜의 책상 앞에 앉아 남편의 편지들을 읽어본다. 남편의 편지는 온통 사랑이라는 말로 가득 차있다. 지난날의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도 미안해하고 용서를 빈다. 그뿐이 아니다. 남편의 편지는 때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상처를 들춰낸다.


남들 앞에선 손잡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무뚝뚝한 남편이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써서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나는 ‘사랑하는’이라고 써놓고 볼펜만 깨문다. 삼십 분이 훌쩍 지났다. 누가 시간을 도둑질해가는 것 같다. 할인매장 계산대 앞에 서 있을 때는 주저앉고 싶게 긴 시간이었는데.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쓰다만 편지를 본다.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낯간지럽다. 편지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새로 편지지를 꺼낸다.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죠. 접견을 못 가서 미안해요. 사정을 다 아시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매번 편지로 나한테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편지를 쓰다 말고 다시 볼펜 끝을 깨문다.


더 이상 남편에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남편에게 면회를 가지 않은 건 그가 받은 긴 형기가 나를 절망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확정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나는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혼을 결심하기도 했었고 사실은 지금도 이혼을 할 생각이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에게 이혼 서류를 내미는 게 너무 가혹하다 싶어 망설이는 것은 아니다. 이혼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을 뿐이고 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아내로서 의무가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시간이 일러 기대하지 않았는데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다. 지혜가 일찍 온 모양이다. 내가 먼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연다. 그러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로 물러선다.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도 화들짝 놀란다.


어머, 전화도 없이 웬일이세요.


혼자 계시네요.


남자는 수박과 물건이 담긴 봉투를 내려놓고 다시 허리를 편다. 봉투에는 내가 일하는 할인매장의 마크가 찍혀 있다.


남자는 내가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것을 모른다.


오늘 면회 갔다 왔습니다. 제수씨한테 좀 가보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시간이 맞질 않아서 못 다녀가는 줄은 아는데, 요즘 통 편지가 없다고.


남자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방바닥에 내려앉는다. 시원한 맥주를 달라면서 불쑥 들어와 앉은 남자를 돌려보낼 아무런 핑계가 없다.


서로 험한 소리를 해가면서 밤새 함께 술을 마시는, 남편이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다. 더구나 재판 중일 때는 남편을 꺼내려고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던 이다.


그렇잖아도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었어요.


나는 책상 위에 있던 편지지를 접어서 책으로 덮어놓는다. 좁은 방에 남자가 들어와 앉으니까 대번에 공기가 답답해진다.


편지 쓰기가 쉽지 않네요.


내 말의 의미가 모호하다. 시간이 없어서 못 쓴다는 건지 아니면 남편에게서 마음이 멀어졌다는 건지, 말한 나도 모르겠다.


남자는 내 말을 무심코 흘려들은 듯하다. 나는 맥주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안에 음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얼른 맥주를 꺼내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넘치는 냉장고 속이 내 속내로 비칠까 염려된다.


나는 맥주를 쟁반에 받쳐 남자 앞에 내려놓는다.


요즘 지혜가 통 먹지를 않아서 모처럼만에 시간을 내서 시장을 봐왔어요.


나는 말하고 나서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먹다 남은 수박을 꺼내서 자른다.


냉장고가 작아서 그런지 조금 샀는데도 냉장고 안이 꽉 차 보이네요. 저녁은 드셨나요. 실은 별로 대접할 게 없어요. 지혜 먹을 것만 잔뜩 샀거든요. 저는 하루 세끼를 회사에서 먹어요.


나는 떳떳하지 못한 사생활을 들킨 사람처럼 자꾸 쓸데없이 말이 많아진다. 남자에게 나쁜 여자로 비치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남자가 남편을 면회하다가 혹시라도 니 마누라는 마음 편하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말해 버릴까 봐 겁난다. 그러면 남편에 대한 애정 하고는 상관없이 억울하고 분할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저녁은 먹었습니다.


남자가 아둔하게 웃는다.


사는 게 다 그렇잖아요. 안에 있는 사람이야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별 달리 할 일도 없을 테고 그러다 보니 자연 궁리가 많겠지만 바깥에 사는 사람은 먹고 사느라 피곤하고 바쁘잖아요.


남자는 맥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빈 잔을 든 채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남자가 건네주는 잔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앉는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고 다시 일어나 빈 잔을 가져와서 그에게 건넨다. 맥주를 따르는데 남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맥주잔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든다. 남자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나는 황급히 눈을 내리깐다. 순식간에 맥주가 넘친다. 남자는 잔을 입으로 가져가서 반쯤 마시고 내려놓는다.


남자가 천천히 내 볼을 만진다. 남자는 내가 몽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 자신감이 넘친 얼굴이다. 남자의 입술이 내 귓불을 스치더니 곧장 입술을 덮친다.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혀를 나도 모르게 힘껏 빨아 당긴다. 남자가 거칠게 내 몸을 더듬는다.


나는 갑자기 남자를 밀쳐낸다. 그러나 흉내만 낼뿐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지혜가 올 시간이에요. 제발........ 저를 놔두세요.


내 생각과는 달리 말투는 사정조다. 아니 차라리 신음에 가깝다. 어느 틈에 남자는 내가 입고 있는 헐렁한 트레이닝복과 팬티를 한꺼번에 아래로 밀어 내린다.


나는 남자의 몸을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뒤틀면서 남자의 등을 껴안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반응한다. 몸은 또 하나의 의지일는지 모르지만.


남자가 금세 고꾸라진다. 나는 실망할 겨를도 없이 남자를 밀어내고 옷을 추슬러 입는다.


남자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문을 나선다. 허겁지겁 욕실로 들어가 남자의 흔적을 씻어내다가 병든 배꼽을 내려다본다.




지혜가 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지혜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다. 웬일인지 지혜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 다시 전화를 건다. 지혜의 전화는 켜지지 않는다.


지혜가 다니는 학원으로 전화를 한다. 지혜가 학원에 나왔었는지, 아니면 아예 결석을 한 건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학원 사정으로 인해 다른 날보다 한 시간 가량 수업이 일찍 끝났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는 지혜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옅은 불에 올려놓았던 피자 치즈가 적당하게 녹은 것을 확인하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창가로 다가서는데 또다시 배꼽이 가렵기 시작한다. 소독약으로 닦아내도 소용이 없다.


소독약을 적신 면봉으로 배꼽을 후벼 파듯이 긁어대다가 골목길을 내려다본다. 4층 높이여서 사거리에서 뻗어나간 모든 골목이 샅샅이 보인다. 골목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하다.


날벌레들이 가로등 불빛 가까이에서 어지럽게 날고 있다. 나방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 친다. 거미가 다가와 빠르게 나방을 거미줄로 돌돌 감싼다.


나방이 산 채로 미라가 되어가는 사이 서서히 피자 위의 치즈가 굳어간다. 다시 굳어버린 치즈는 아까와는 다르게 고름 덩어리 같다.


나는, 사거리로 나온다. 원룸 앞을 지나가는 길을 중심으로 십오도 각도로 갈라지는 세 개의 길을 바라보다가 문득문득 등 뒤의 길을 돌아본다. 등 뒤에서 지혜가 나를 부르며 달려올 것 같다.


지혜와 어긋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흩어진 길을 모아 본다. 길은 피뢰침처럼 생겼다. 나는 어느 한 길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시내 중심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렇지만 연신 뒤를 흘끔거리게 된다. 아예 뒤돌아서 걷기도 한다.


그러다 골목 끝에서 중심으로 되돌아온다. 이번엔 재래시장 쪽으로 걸어간다. 다시 돌아와 공구상가 쪽으로 난 길로 향한다. 그렇게 거듭 골목길을 오가는 동안 새벽이 오고 만다. 밤새 집 앞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기다리기를 체념하고 골목을 벗어난다.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니다 셔터 내려진 상가 앞에서 쪼그려 앉은 아이들을 발견한다. 사내아이도 섞여 있다. 가까이 다가가기가 무섭다.


하지만 나는 성큼성큼 다가간다. 담배를 물고 있는 아이가 나를 째려본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지혜의 이름을 들먹인다. 한 아이가 콧방귀를 뀐다. 다른 아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난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대부분 욕설이어서 그런지 사납고 거칠게 들린다. 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또다시 걷는다.


신문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셔터 아래로 신문을 집어넣는다. 청소부 아저씨가 거리를 쓸고 있다. 나는 미친년처럼 배꼽을 사정없이 긁는다. 쾌감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진다.


출근도 못하고 그렇다고 침대에 누워보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를 미친년처럼 돌아다니다 보니 또다시 밤이다.


거리는 상가에서 내뿜는 불빛으로 어둠에 맞선다. 사흘 밤낮을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원과 번화가, 그리고 불량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소문을 쫓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먹지 못하고 자지도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는데 내가 바라던 우연한 만남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종아리가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오금은 끊어질 듯이 아프다. 포기하려는 것이 아닌데 자꾸 주저앉게 된다. 이제 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다.


어쩔 수 없이 공원 입구에 쪼그려 앉아 쾌감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며 배꼽을 긁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한다. 할인매장의 대리는 전화로 이미 해고 통지를 해왔다. 학교에서는 지혜를 퇴학시키겠다고 엄포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내 앞에 천 원을 놓고 간다. 픽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핑 돈다.


세 명의 아가씨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나는 무심코 하이힐을 신고 허벅지가 다 드러난 핫팬츠와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아가씨들이 꽃집 앞에서 갑자기 주춤거린다. 꽃집에서 걸어놓은 백열등이 아가씨들의 표정을 비춰준다. 한 아가씨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나는 실성한 여자처럼 성큼성큼 다가가 그중 한 아가씨 앞을 막아선다. 눈빛이 흔들리던 그 아가씨다. 하지만 지혜의 눈빛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잠시 망설인다.


아가씨의 몸을 훑어본다. 배꼽 피어싱을 하고 있다. 내 배꼽에 손가락을 넣고 냄새를 맡아보던 지혜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덥석 낯선 아가씨의 손목을 잡는다. 아가씨가 흠칫 놀란다. 그러나 나는 무작정 이 낯선 아가씨를 끌고 앞장선다. 다행히 아가씨가 말없이 따라온다.


너희들 다시 한번만 지혜하고 만나면 죽여 버리겠어.   


나는 화를 못 이기는 척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친다.




낯선 아가씨가 속옷 차림으로 좌변기에 앉는다. 남편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만 해도 지혜와 나는 종종 함께 몸을 씻었다. 하지만 화장을 지우지 않은 이 아가씨의 얼굴은 여전히 낯설다. 혹시 내가 다른 애를 데려온 것은 아닌지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팬티랑 브래지어 이리 줘. 엄마가 빨아줄게.


지혜의 오줌 소리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인다.


아가씨가 속옷을 벗어 내게 준다. 사나흘 동안의 행적을 보여주듯 팬티가 누렇게 변해 있다. 나는 더럽혀진 팬티에 비누질을 흠뻑 해서 허벅지에 얹어놓고 힘을 주어 치댄다.


삶아야겠다.


나는 아가씨의 팬티를 내 팬티와 함께 세면대 위에 던져 놓는다.


멀뚱하게 바라보고 서있는 아가씨를 끌어당겨 샤워기로 몸을 적신다. 아가씨의 가슴이 봉긋하다. 아랫배도 조금 나왔다. 거웃도 무성하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의 몸이 여간 낯설지가 않다.  


비누거품으로 문지르다 아가씨의 젖꼭지를 스친다.


아, 아파.


아가씨가 질색을 한다.


나는 모처럼만에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아가씨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거품으로 문지른다. 그제야 아가씨는 폼클렌징으로 두터운 화장을 지운다.


아가씨가 열심히 화장을 지우는 모습을 훔쳐보느라 비누질을 하던 내 손이 그녀의 엉덩이 골짝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도 모른다.


엄마, 뭐해.


아가씨가 세수를 하다 말고 짜증스럽게 소리친다.


미안, 딴생각했어.


나는 서둘러 변명을 하고 아가씨와 등과 엉덩이에 샤워기를 들이댄다.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내 딸이 맞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낯섦이 주던 그 두려움이 다 가시지는 않는다.


한 번만 더......


나는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배꼽을 긁는다.


엄마 미쳤어, 그렇게 부었는데 긁으면 어떡해.


지혜가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고 내 손목을 잡아당긴다. 지혜의 키가 나하고 비슷하다. 언젠가 같이 걸을 땐 내가 좀 크다 싶었는데 내 구두 높이였나 보다.


너 때문이야.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오른 나는 지혜의 알몸을 껴안고 울음을 터트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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