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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Jan 16. 2023

기억하세요

김치부침개  덕분에...

치즈가 듬뿍 들어간 김치부침개


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 보면 거의 매일 밤 아홉 시가 넘습니다 

제가 친구(진돗개)와  함께 산책하는 것도 그 이후입니다


그래야 겨우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거지만 친구는 참았던 오줌을 쌀 수 있는 시간이고 저는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처럼 그저 어둠뿐인 날에도 저는 달과 달 옆에 뜬 별을 그리워하며 아주 짧은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샤워를 하고 나면 벌써 열 시가 훌쩍 넘습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긴 하루가 다 갑니다


지만 짧은 저의 하루는 시작입니다

저는 비로소 기타를 치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그도 아니면 가끔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제가 몹시  외로움을 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혼자 눈물 흘리는 날도 더러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슬퍼서도 불행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사무치는 외로움 탓이라고 밖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무튼 오늘 밤엔 묵은 김치로 부침개를 부쳤습니다


비도 오는데 김치부침개 부쳐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게 어떻겠냐는 명화작가님의 댓글을 읽고 난 뒤부터였을 겁니다.


김치부침개가 몹시 먹고 싶었거든요


제가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와 장모님이  김치부침개와 두부를 거의 다 드시고 졸리다며

방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았습니다


저는 어제  먹다 남긴 어묵탕을 데워와 술을 마시며 애써 즐거운 척해보지만

끝끝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보이고 맙니다


이건 오래된 비밀인데요

저는 제가 우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외로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외로운지 저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  탓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과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우주 암흑물질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당신만 알고 계세요 이것은 비밀이니까요


암흑물질, 그것의 실체는 혹은 정체는 순도 100%의 외로움입니다


신께서  왜 그렇게 온 우주를 암흑물질로, 아니 외로움으로 가득가득 채워놨는지도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우주를 외로움과 외로움과 외로움으로 채워놓은 것은 별과 별이 세상과 세상이 마음과 마음이 서로서로 그리워하게 하려는 것 아닐까요


우주를 외로움과 외로움과 외로움으로 채워놓은 것은 서로서로 사랑하게 하려는 사랑에 빠트리려는 신의 계획이 아닐까요


신은 당신이나 나보다 더 외로움을 많이 타셨던 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신이 외로움 그 자체는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제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당신을 그리워하며 당신이 쓴 글을 읽고 당신이 낸 책을 사고 끝끝내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보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해와 지구 사이에 놓인 외로움 혹은 외로움의 거리에서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딱 해와 지구, 그만큼의 거리와 그만큼의 공간을 채워줄 암흑물질, 즉 외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만큼의 외로움과 외로움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그리움도 사랑도 유지되니까요


해와 지구 사이의 외로움, 외로움의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의 해가 되어 주기도 하고 서로의 지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거니까요


그것은 친구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잖아요, 하다못해 23.5도 정도의 기울기에도 무더위가 덮치기도 혹한기가 오기도 한다는 걸요


우리 사이가 너무 멀어지거나 너무 가까워지면 파멸이 온다는 건 더 말해 뭐 하겠어요


기억하세요 외로움이 외로움의 거리가 그리움을 키우고 사랑을 지켜준다는 걸요



참고

1. 친구의 아침 산책은 제 아내가 시킵니다.

2. 제 아내와 장모님은 본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3. 김치부침개 다 먹었다고 우는 거 아닙니다

4. 요리는 제 취미 중 하나입니다


* 아래 이은희시집은 온라인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김치부침개보다 더 맛있는 아이러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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