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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Feb 07. 2023

별이 머무는 언덕

예수의 좌우에서 처형되었던 두 강도 그리고 또 한 사람.......

늦은 시간 일을 마친 나는 갑자기 몰려드는 허기를 달래려고 돼지고기를 볶았습니다. 아내와 장모님은 변함없는 술친. 즐겁게 읽고 있는 opera 작가님의 책도 함께...


- 긴 시간 게으름을 피우다 간혹 억지로라도 창작열을 되살려보려 했지만 번번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글 쓰는 것보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 열의는 곰처럼 겨울잠에 빠져 있지만 곧 깨어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저는 종종 '매화나무 아래서......'를 그려보거든요.


하지만 공백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매화나무아래서.....'는 잠시 미뤄두고 이미 초고를 완성해 놓은 '별이 머무는 언덕'을 다듬어 가며 올리겠습니다.


초고는 나온 상태여서 게으르고 나태한 가운데도 가능하리라 여겨집니다.


혹시라도 '매화나무 아래서......'를 기다리는 분이 있으시다면 사과드립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별이 머무는 언덕"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될 당시에 좌우 양 옆에서 함께 처형되었던 두 강도의 삶을 그린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진짜 강도였을까?

유월절 아침 예수 대신 풀려난 바라바라는 강도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에서 비롯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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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양의 콧김처럼 미적지근한 니산월 바람이 초장을 쓰다듬는 밤이었다.


목자 라몬은 투봉을 찬 채 장막 옆에 누워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아들 사무엘도 아버지 곁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별이 아니라 아버지의 고수머리와 턱수염을 흘끔거렀다.


낮이었다면 비록 며칠째 씻지 못해 냄새가 나긴 해도 은빛이 감도는 아버지의 무성하고 긴 갈색 머리와 턱수염을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욱한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무겁게 라몬의 가슴을 짓눌렀다.

 

라몬은 생각난 듯 풀잎을 뜯어 입에 물었다.


이윽고 어둠 속으로 풀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의 출현을 경계하며 졸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던 양들은 비로소 안도한 듯 납작 엎드려 잠을 청했다.


반면 어둠을 틈타 양들을 습격하려고 숨어 있던 들짐승들은 라몬의 풀피리소리가 들려오면 슬그머니 일어나 돌아갔다.


밤이든 낮이든 근처에서 나고 자란 들짐승들에게 라몬의 풀피리소리는 사자의 포효와도 같은 위협이었다.


풀피리소리가 들려오는데 겁 없이 양을 공격하다가 번개처럼 날아온 양치기 라몬의 투봉에 맞아 죽는 우두머리들을 보아온 탓에 학습이 되었다.


때문에 들짐승들은 이제 라몬의 풀피리소리만 들어도 슬금슬금 뒤꽁무니를 뺐다.  


양 떼들에게는 안락하기만 한 목자 라몬의 풀피리소리가 들짐승들에게는 두려움이었다.


라몬은 풀피리를 불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양 떼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들짐승들이 풀피리소리를 두려워한다고 해도 밤은 밤이었다.  


깊은 밤 어떤 양은 갑자기 미친 듯이 날뛰어서 양 떼를 두려움과 혼란에 빠트렸다.


그런 양들은 십중팔구 기생충이나 말파리, 쇠파리 또는 진드기에 감염되어 있어서 다른 양들과 격리시켜 치료해줘야 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또 망나니 기질을 타고난 양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라몬은 칼로 망나니 양의 멱을 땄다. 양을 더없이 사랑하는 라몬이지만 혼란을 방지하고 다른 많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어떤 양은 벌러덩 뒤집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바동거리다 죽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양들의 움직임과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밤중에 새끼를 낳으려고 진통을 시작하는 양이 있으면 밤새 곁을 지키며 고통을 함께 나눠야 했다.


오늘 밤은 여느 날과 달리 라몬의 마음이 더없이 평화로워야 했다. 


낮에 그분이 라몬을 찾아와 주셨기 때문이었다. 일생 동안 찾고 기다려왔던 그분이라고 그는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속 저 밑바닥에서는 자유와 행복을 흙탕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왔다.


알 수 없는, 막연하기 짝이 없는 불안감이었다. 그분에 대한 의심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천사의 음성을 듣고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땅에 엎드렸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헤롯의 폭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헤롯은 로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민중을 억압하고 세리를 앞세워 무거운 세금을 걷어갔다.


또한 왕좌에 대한 병적인 불안감으로 처남과 조카 등 가까운 사람들을 의심하고 죽였다.


급기야는 유대 온 땅을 뒤져 생후 2년 미만 된 아기를 전부 죽이라고 명령했다.


선지자가 예언 한 대로 유대 땅에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태어난 대부분의 아기들이 헤롯의 칼에 맞아 죽었다.


헤롯은 병들어 죽기 직전까지도 왕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큰아들 안티파터를 반역자로 몰아 죽여 버렸다.


게다가 온 성안이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어수선하였다.


이는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들이려는 로마의 시책에 맞춰 구레뇨가 인구조사를 실시한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당시 어수선한 일 때문에 모두 마을로 내려가고 아이들만 남아서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라몬과 친구들은 모두 아들 사무엘과 비슷한 나이였다. 그들은 열두 살 전후의 목동이었다


어린 목동들이 실컷 장난치고 놀다가 지쳐 누웠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 말씀하였다.


목동들은 두려워 떨며 땅에 엎드렸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눅2:10) 


목동들은 별이 인도하따라갔다. 그 당시에도 꼭 오늘 밤처럼 불안했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 당도해서 구유에 놓인 아기에게 경배하는 순간부터 불안감이 사라졌다. 대신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이 마음에 가득 찼다.

 

그렇다고 어린 그날의 환희가 언제까지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억압과 혼미로 인해 환희는 금세 지워졌다.


라몬은 자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역죄로 처형되는 것을 목격하거나 소문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환희를 빼앗아가고도 남을 충격이었고 절망이었다.


구세주라더니,구세주가 탄생했다더니,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


원망과 불신이 자라났다.


얼마 전에는 헤롯에 이어 로마의 하수인이 된 그의 아들 헤롯 안티바스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의붓딸 살로메에게 선물하는 기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온 유대에 퍼졌다.


라몬은 구유에서 영접했던 그 아기가, 천사들이 구세주라 칭하던 그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임을 당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망이 엄습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로마군들이 여자들을 잡아다가 강간하고 노예로 팔아치우는 걸 목전에서 보아도 자리를 피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라몬은 그런 자신과 세상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고 수치스러웠고 그리고 무엇보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유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라몬 역시 악명 높은 본디오 빌라도와 미치광이 헤롯 안티바스의 통치에서 해방시켜 줄 왕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도 꺾이지 않는 믿음이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나약하지만 믿음이 어둠을 희미하게 밝혀주었다. 원망에 짓눌린 짜브러진 믿음이고 희망이긴 해도 버티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기다림과 믿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분이 직접 찾아오셔서 라몬의 마음에 완전한 자유를 선물하셨다.


그런데 지금, 마음 바닥에 가라앉은 이 앙금 같은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약한 믿음을 지키려고 라몬은 시편을 낮게 외었다. 아들 사무엘도 아버지 라몬을 따라 읊조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내게 두려움이 없도다.’  


하늘 저 멀리서 갑자기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졌다. 잠시 수그러드는 듯하다가 또다시 소나기처럼 별똥별이 쏟아져 내렸다.


“아빠도 보셨죠. 유성우가 내리는 것. 정말 대단했어요. 혹시 무슨 징조는 아닐까요?”


라몬의 아들 사무엘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하하....... 이제 너도 제법 목동 같은 소릴 다 하는구나.”


라몬은 이유 없는 불길함을 떨쳐내려고 과장 되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 그분을 뵈었는데, 라며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어쩐지 불길함이 떨쳐지지 않았다.  


언제나 습관처럼 눈으로 양 떼 무리를 훑고 있던 라몬은 문득 고개를 돌려 장막 뒤편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됩니다. 


흙이 주는 인생의 맛과 멋(김선옥),

버리는 힘으로 올라가는 인생면역럭(김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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