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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Feb 16. 2023

장모님의 남자

황토물 들이는 날

어제인지 그제인지? 사진 찍어놓고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나서.....


장모님이 노트북 위에 슬그머니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장모님의 유일한 남자.

다음 생은 저와 사시겠다는 장모님 말씀에 아내는 그저 웃습니다. ㅎ

장모님은 올해 아흔이십니다.

아직 건강하시고 기억력도 우리보다 좋습니다.

일본분이신 장모님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이 생각나 덧붙여 봅니다.





제목 : 황톳물 들이는 날



원인모를 가려움증 때문이었다. 밤새 잠을 설치다 새벽녘에는 아예 자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로 나왔다.     

벽난로 옆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깨어보니 안개가 담도 울타리도 없는 집 앞까지 다가와 진을 치고 있다.     

'저 괴물이 우리 고향을 샘키고도 배가 고파서 여까장 잡아먹을라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겨 뭐여.'     

언젠가도 밤을 꼬박 새우고 집 앞을 서성이다가 포도밭집 할아버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포도밭집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소목골 사람들 모두가 수몰 지구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 알았다. 물론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한 것도 그 이후였을 것이다.        

그날 아침처럼, 오늘도 포도밭집 할아버지가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안개를 뚫고 저만치 가고 있다.     

포도밭집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불구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사시사철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동구 밖 포도농장으로 나간다.     

비록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음이지만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위세는 일당백이 넘을 듯하다.     

게으른 내가 새벽안개를 뚫고 출정하는 포도밭집 할아버지를 목격하는 날은 고작해야 일 년에 서너 번이다.     

포도밭집 할아버지가 침입자인 안개 군단을 향해 절뚝절뚝 걸어 들어간 뒤다.     

나는 마당으로 나와 김장 때나 쓰던 커다란 함지박을 수돗가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포도밭집 할아버지를 집어삼킨 안개 군단을 바라본다.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원군, 즉 햇볕이 도착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되리라.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대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나는 어제 산에서 담아온 묵직한 비닐봉지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속에 든 황토를 함지박에 거침없이 쏟는다. 일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봉지를 뒤집어 탈탈 털기까지 한다.     

애써 주운 산밤을 쏟아버리고 대신 담아온 데다 못마땅해 하는 아내의 눈치 속에서 건져 올린 황토라서 더욱 애정이 간다.       

나는 처마 밑 항아리에서 염매제로 쓸 천일염을 한 바가지 푹 퍼서 황토 위에 붓는다. 함지박 안의 황토 산에 금방 설경이 펼쳐진다.     

호스 끝을 잡고 수돗물을 틀었다. 호스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호스가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몸을 서너 차례 뒤집은 후다. 이윽고 호스 끝으로 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망설임도 미련도 없이 설경을 향해 물줄기를 가차 없이 쏘아댄다.     

맥없이 설경이 쓸려내려 가고, 황토 산이 무너진다. 급속히 불어난 물이 함지박 속 세계를 단숨에 집어삼킨다.        

나는 이쯤에서 호스를 함지박 속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다.     

나는 마치 창세기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가라앉은 황토 덩어리를 손으로 짓이기고 소금이 더 빨리 녹을 수 있도록 물을 휘젓는다.     

지하에서 퍼 올린 수돗물이라서 그런지 생각처럼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스한 느낌마저 든다. 황토와 소금과 물이 삼위일체 한 몸으로 변신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황톳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어느새 거짓말처럼 안개가 물러나고 햇볕이 내 등짝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내 믿음대로 혹은 예상대로 오늘도 안개 군단과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치열했던 전투는 대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내의 아침잠을 방해해가며 황톳물을 들이겠다고 소란을 떨 수는 없다.     

나는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대승리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대청호를 내려다본다.       

흐뭇함도 잠시.     

아침 준비로 마음이 바빠진 나는 이내 시선을 거둬들이고는 텃밭으로 걸음을 옮긴다.       

텃밭에는 고구마 넝쿨이 풍성하게 엉키어 나뒹굴고 있다. 열무며, 가지, 고추, 토마토 따위도 텃밭 여기저기서 실하게 익어가는 중이다.     

나는 열무밭 고랑을 타 넘어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소쿠리에 담는다. 오늘 나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만들어 줄 생각이다.     

11분 정도 파스타를 삶아서 올리브유로 살짝 볶는다. 소스는 파스타가 익는 동안 만들어 놨다.     

생토마토와 토마토홀을 적당히 섞어 올리브유로 볶다가 해산물로 뺀 육수를 부어 끓인다. 거기다 양파와 마늘 표고버섯 등을 추가해 맛을 내고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해둔 꼬막 살을 듬뿍 넣어 섞는다.     

소스에 향신료나 소금은 넣지 않는다. 대신 소량의 굴소스를 넣어 맛을 낸다.     

아내와 어머니를 위한 것이니까 아내와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은 빼고 아내와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들만 넣는 것이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오늘 스파게티는 다른 때보다 훨씬 맛있는데, 라거나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고 몇 번씩이나 강조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다. 뿐만 아니라 스파게티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입으로는 맛있다 말을 하면서도 맛있게 먹지 못한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식탁에 앉은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내가 만든 스파게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식은 된장국에 찬밥을 말아서 꾸역꾸역 쑤셔 넣을 줄은 몰랐다.     

며칠 계속되어온 어머니의 침묵과 화난 얼굴에 대해 무심한 척 일관하던 아내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어머니를 저만큼 삐치게 한 일이 뭐냐고 나에게 묻는 듯한 눈길이다. 어쩌면 순전히 내 자격지심일지 모르지만.     

나는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아내와 더 이상 시선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서둘러 접시를 비우고 일어선다.     

- 설거지는 그냥 담가 놔.     

나는 습관처럼 말하고 침대 시트와 빛바랜 가운과 옷가지 등을 안고 수돗가로 나간다.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전 기억 하나가 자꾸 맴돈다. 벌써 며칠째 계속되는 기억의 반복이다.            

우리 부부가 잠실에 살고 있을 때였다. 아내와 내가 중곡동에 들러 어머니를 모시고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풍채 좋은 중년 신사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향해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고는 대뜸 할머니 일본 사람이시죠,라고 물었다.     

중년 신사의 말투와 표정이 적대감 없이 밝고 환해서 나는 그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같은 일본 사람을 만난 게 반가워서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 나는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중년 신사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어머닌 한국 분이세요.     

어물쩡 대답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 대신 아내가 나섰다. 아내와 나는 중년 신사의 착각이 의아스럽다는 듯 바라봤지만 화를 낸 건 아니었다.       

중년 신사는 인정을 하지 못하겠다는 듯 외면하고 있는 어머니와 애써 눈을 맞추려 했다. 마치 일본 사람 맞잖아요, 하고 캐묻는 얼굴로.     

어디를 봐서 어머니가 일본 사람으로 보이세요?     

나는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중년 신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틀림없이 일본 사람인데.     

어머니가 끝내 시선을 주지 않자 중년 신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가버렸다. 내 질문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심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아내와 나는 그 중년 신사를 살짝 미친 사람 취급하며 무시해버렸고 금방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그날 만났던 중년 신사의 말이, 그 장면들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마치 잘 못 끼어든 필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상이고 음성이다.            

아침 일찍 도회지 직장에 나가면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 아내는 그제,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서야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와 달리 해거름에 퇴근한 아내는 모처럼만에 어머니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묻고 말을 붙여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텔레비전만 바라본 채 대꾸가 없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묵묵부답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삐치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입부터 다물어 버려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 것이다. 아내는 이번에도 어떤 이유로 어머니가 삐친 거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엄만 시간이 약이야. 당신은 신경 쓰지 마.     

늘 그렇듯 아내는 자기 어머니의 이유 없는 침묵으로 내가 불편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고 도리어 미안해했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입을 굳건하게 닫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 원인이 나였기 때문에 아내를 대하는 게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냥 아내에게 자백하고 혼나면 될 테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아내의 야단이라는 게 분노에 찬 잔소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아내가 주먹을 휘두르거나 욕을 퍼붓지는 않으니까.- 나는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어머니의 침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아침이면 이무기처럼 안개를 토해내는 대청호수와 샛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은행나무들에 대해,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다.     

어머니의 침묵에 대해서는 벌써 잊은 것처럼.     

그러니까 아내는 한 때 출판인이자-편집장 출신이니까- 현직 시인-시인은 은퇴가 없으니까.- 답게 자신의 출근길에 목도한 것들을 서정적 과장으로 묘사를 하는 것이었다.     

요즘 시를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아내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지 모른다. 쓰는 대신 말하는 것으로.     

그러는 사이 곧 어둠이 몰려오고 한기가 집안으로 잠입해 들어왔다. 문틈으로만 스며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집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고 있었다.     

때 이른 감이 있었지만 나는 벽난로에 장작을 지폈다. 산골이라 혹시 몰라 추석 전에 벽난로와 굴뚝을 청소해 둔 덕에 연기가 안으로 회오리치듯 강하게 빨려 들어갔다.     

장작에 옮겨 붙은 불은 굶주린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장작을 삼켜버렸다. 덕택에 금방 집안이 따뜻해졌다.     

그 온기로 인해 턱없이 긴장이 풀려버렸을 때였다.  아내는 지난 주말 산에서 채취해온 산초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작년 같으면 어머니가 알아서 산초장을 담갔을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뭐라 입을 뗄 듯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대로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산초를 씻어 건져두었다. 그리고 매실청과 식초와 설탕 따위를 섞은 간장에 산초를 담갔다.     

산초장을 가장 잘 먹는 사람은 나였고 그것을 즐겁게 여긴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아내는 산초장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내팽게쳐놓은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방 안에서 꿈쩍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밥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하더니 들어가 버렸다.     

- 어디 편찮으세요?     

아내가 어머니 방문을 열고 물었다. 화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 귀찮아.     

- 귀찮아도 식사는 하셔야지.     

- 죽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래.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 하든지.     

아내가 역정을 냈다. 어머니의 우울증과 침묵이 아내에게는 시작이지만 나에게는 가려움증과 함께 벌써 며칠 전부터 계속되는 시련이었다.       

-........     

- 병원에 갈까?     

늘 그렇듯 아내는 이내 목소리를 자상하게 바꾸었다.     

- 아픈 데 없어.     

- 그럼 왜?     

- 밥맛이 없어.     

- 밤이라도 먹든지. 엄마가 좋아해서 저 사람이 일부러 삶아 놨잖아.     

- 나중에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게.     

- 그럼 연속극이라도 봐. 불 꺼놓고 유령처럼 앉아 있지 말고.     

아내는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어머니 방에서 나왔으나 그 원인이 나에게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어제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아내가 아침 겸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산행을 서둘렀다.     

아내는 주말마다 이런저런 핑계로 산행과 들 나들이를 주장해왔고 나는 귀찮아하면서도 늘 아내를 쫓아다녔다.     

우리는 추석 전부터 시작된 밤 줍기가 끝나면 도토리를 주우로 다닐 거고, 그다음엔 대청호 인근 들과 마을을 쏘다니며 은행을 줍고 감을 따올 것이다.     

우리는 타지에서 들어온 새내기 주민이지만 무상으로 가을걷이 할 것들이 있는 곳을 꿰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잡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며 수확해온 과실들을 보며 만족감을 넘어 행복에 겨워했다.     

하지만 어제는 아내와 내가 바랑을 매고 집을 나서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비닐봉지라도 챙겨 주고 우리가 산길로 접어들 때까지 현관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도 어제는 아예 방에서 나와 보지조차 않았다.     

아내 역시 어머니 방문 앞에서 다녀오겠다고 소리만 치고 나왔다.       

아내와 나는 어색하게 산 초입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어색함도 잠시 우리는 널린 밤을 줍느라 바빴고 밤을 줍는 것에 흥분하기까지 했다.     

얼마 안 지나 들고 갔던 봉지마다 밤이 넘쳤다. 밤은 아직도 발치에 차일 만큼 널려 있었지만 더 이상 담을 봉지가 없었다.     

어머, 저거 황토 아냐.     

내려오는 산길에서 우연히 황토를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어쩌다 산길 가장자리 언덕이 무너져 있었고 그곳에 빛깔 좋은 황토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옆엔 한 무더기의 황토가 수북이 쌓여 있어 주어 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 황토는 어느 짐승이 굴을 파느라 건져 올려놓은 것 같았지만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밤마다 반복되는 가려움증 탓이었다. 나는 잠을 방해하는 가려움증을 황토가 다스려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황토를 구할 길 없어서 인터넷으로 황토를 사려고 알아보는 중이었고 황톳물을 들여도 좋은 것들을 골라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내가 황토를 구입하는데 반대했다. 어쩌면 아내는 내가 겪고 있는 가려움증의 원인이 이불이나 옷가지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어제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밤을 버리고 대신 황토를 퍼담았다.     

반드시 가려움증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황톳물 들이는 것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 당신도 황톳물 들여 줄까?     

나는 하얀 옷들을-하얀 양말 그리고 심지어 하얀 팬티까지- 수돗가에 내려놓으면서 텃밭에 엎드려 열무를 솎고 있는 아내에게 묻는다.     

애당초 내가 못마땅한 어머니에겐 말조차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곁눈질로 눈치만 실피다 말았다.     

- 당신 거 하는 거 보고할게요.     

아내는 열무 밭에 머리를 파묻은 채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황토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     

나는 먼저 빛바랜 이불 홑청을 황톳물에 담근다. 본래는 황토이불이었지만 오래돼서 황토 냄새는커녕 가려움증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의심되는 피의자였다.     

-.........     

아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열무를 솎는데 열중이다.     

- 인터넷 들어가 봤더니 황토가 삼겹살보다 몇 곱절은 비싸던데.     

아내나 어머니가 시답잖게 생각하는 황톳물 들이기가 얼마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 일깨워주고 싶었던 건 아니다.     

황토를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마음도 없다. 황토에 이끌리는 내 마음을 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내뱉은 것 뿐이다.     

- 파는 건 다르겠지. 얼굴에 바르기도 하고 심지어 먹기도 한다는데.     

자격지심 탓인지 아내의 목소리가 이물질이 낀 듯 서걱대는 것 같이 들린다. 못마땅한 걸 참아주는 것이 고맙긴 한데 내 가려움증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3년 전 서울서 소목골로 어머니를 모셔올 때만 해도 중곡동 용마산 자락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가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이라도 걸리게 될까 봐 염려했다.     

우리 부부가 어머니보다 이태 정도 일찍 소목골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와 소목골 사람들 사이에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곳에 온 지 단 하룻만에 뒷집할머니와 의자매를 맺었다.     

그 증표로 욕쟁이로 소문난 뒷집할머니가 새로 도정한 쌀로 우리 집 쌀독을 채워주는 것은 물론 트럭 행상이 올 때마다 고등어며, 동태, 두부, 술빵, 심지어 왕래가 없는 나까지 챙기느라 막걸리와 소주도 사서 어머니 손에 들려 보냈다.     

뒷집할머니의 넘치는 인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우리 부부에게 마을 사람들에 대한 친밀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뒷집할머니는 우리 말고도 타지에서 온 집, 그러니까 동구 밖에  있는 야생화 농원과 족히 오십 년은 되었을 커다란 상수리나무 아래 자리 잡은 공방집과 산꼭대기집에 사는 요즘 말로 주폭에 가까운 개망나니에게도 차별 않고 인심을 베풀었다.     

뒷집할머니에게는 사람 차별 않고 베푸는 성인에 가까운 인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친화력이 있었다. 그 친화력은 마을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데가 없어서 이방인이던 우리까지 마을 사람이 되게 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덕택에 아내는 종종 출근길에 마을 할머니들을 청주 장에 실어 나르거나 마을 사람들의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게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놀라운 친화력은 마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읍내까지 뻗쳐서 읍내 장날이면 우리도 마을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다.     

장날에만 있는 천막 식당에 들어가 순대국밥이라도 사 먹을라치면 아무개 할머니네 따님 오셨네유. 소목골 선생님 오셨슈, 하는 인사말을 듣는 것은 어머니의 친화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친화력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휘되는 것인지는 사실 우리는 모른다.     

어쨌든 뒷집할머니의 베풂이 서울서 돈을 잘 번 다는 딸의 경제적 지원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어머니의 친화력은 더 빛나 보였다.     

며칠 전 경로당 입당식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뒷집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우리 집까지 어머니를 찾아온 것은 경로당 입당식이 있기 사나흘 전쯤이다.     

어머니는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보건소에 가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후유증으로 가벼운 신열에 시달려 하루 종일 집안에 누워 있었다.     

뒷집할머니는 트럭 행상이 왔는데도 나와 보지 않는 어머니가 궁금해서 동태 두 마리 사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렸다.     

'동상 뭐하고 자빠졌어. 얼른 이거 받아.'     

뒷집할머니는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문 앞에 서서 소리쳤다. 어머니가 부스스한 몰골로 나가서 몸살이 났다고 하였다.     

'지랄 났네. 이거 끓여 처먹고 발딱 일어나.'     

나는 어머니보다 두어 살 더 많은 뒷집할머니가 왼쪽 팔을 뒷짐 지고 다른 팔을 내저으며 돌아가는 모습을 거실 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도 하늘하늘 가벼운 몸매지만 뒷집할머니는 가볍다 못해 휘청거렸다.


그리고 다시 뒷집할머니를 본 것은 지난주 목요일, 경로당 입당식에서였다.     

비록 어머니의 친화력에 힘입은 타이틀이지만 이제 엄연한 소목골 작가가 아닌가. 그런 나로서는 경로당 입당식 날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의무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입당식에 참석했고 인근 시멘트공장 공장장님은 물론 읍내 유지들과 인사를 나누는 호사를 누리기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잘 해냈고 순조로웠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인사들이 돌아가고 마을 사람만 남았을 때부터 뒷집할머니는 내게 연거푸 막걸리를 따라주었고 나는 겁도 없이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시고는 취해버렸다.     

혀가 꼬이는 걸 나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실수라도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 아지매는 암만 봐도 일본 사람 같어유.     

슬그머니 경로당 출입문을 열고 나서는데 취기가 오른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목덜미를 움켜 잡았다.     

비록 햇볕의 지원을 받아 안개 군단을 물리치기는 하지만 백전백승의 장수이자 일당백의 위세를 지닌 분이 아니던가.     

나는 장수를 배알 하는 신하의 자세로 그분에게 내가 아는 바를 말씀드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일본 사람 맞아요. 거참, 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영감님, 아니 장군님처럼 구분이 되는 분이 있는 가 봅니다. 역시 일당백 위세에 백전백승의 장군이십니다.


나는 말려드는 혀를 애써 펴가며 장군님께 보고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미친 줄 알았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뒷집할머니 집에 한패의 시민 모임 사람들이 몰려왔다 간 건 나도 어머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뒷집할머니는 위안부가 아니라 정신근로대로 끌려갔다 돌아온 것이 아닌가 짐작되었다. 하지만 뒷집할머니는 한국에 돌아와서 도리어 갖은 수난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     

포도밭집 할아버지 역시 징용에 끌려갔다가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다는 것도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장의 누나 둘이 위안부로 끌려갔는데 그중 한 사람은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라는 것도 여러 번 들은 기억이 집에 와서야 났다.     

어쩌면 뒷집할머니나 소목골 노인들에게 일본과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사정이 그러한데 아무리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머니가 일본 사람임이 알려져서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권력을 뺏을 줄도 알고 관은 물론 주민을 선동할 줄 아는 이장이 마음에 걸렸다.     

일본 사람을 우리 마을에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아닙니겨. 쫓아냅시다. 쫓아내서 우리 마을의 정신과 단합된 힘을 세상에 보여줘야 혀유.     

이장이 그렇게 주민을 선동하고 나설 것 같았다.        

이장 말이 맞어유. 그리고 나를 절뚝발이로 만든 일본 사람과 한 마을에 살 수는 없잖어유. 그 여시 같은 일본 여자가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쫓아내야 혀유.       

거기다 안개를 쳐부수는 백전백승의 장수인 포도밭집 할아버지마저 이장 편을 들고 나서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야 찾아온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괜찮을 거야.     

말 그대로 후회 막급이었지만 소목골 사람들의 인정을 떠올리며 낙관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작년, 아내가 회사에 나가면서부터였다.     

어머니와 나는 단둘이 식탁을 마주하고 점심이나 저녁을 챙겨 먹는 일이 잦았고 어머니의 고해성사는 바로 그 시간 식탁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식탁 앞 고해성사는 명세기 작가라는 사람을 향해 털어놓은 어머니의 양심 고백이었다.     

나한테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켜줄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마을 사람들 앞에서 주둥이를 나불거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국적은 오랫동안 목숨이 걸린 일이 될 수 있었고, 훗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무거운 비밀이었지 싶다.     

그런 어머니의 고해성사를 몇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부모를 따라 일본에서 건너왔다가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고인이 된 장인과 만나 용마산 골짝에서 새 삶을 열었다. 그곳에서 내 아내를 낳았고 아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호적도 만들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듣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사실 나도 이야기의 소재로 써먹을 수 있을까 궁리부터 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만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고 정말로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이라고 몇 번 강조했었다.     

딸에게조차 말한 적이 없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나는 설마 하고 가볍게 넘겼다.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은 해방 직후엔 감당키 어려운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고 그 후유증을 지금까지 겪지 말란 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둔하기 짝이 없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곤혹스러운 심정으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다가 소목골 할머니들이 우르르 뒷집할머니 집으로 몰려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게 되었다.     

집에 와서도 내심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고 그간의 인정이 하루아침에 돌아설 리 없을 것이라며 위안을 삼고 있었지만 노인네들의 웅성거림은 심상치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그때까지도 어머니의 친화력이 모든 것을 무마해주리라 믿고 있었다.       

나는 주방을 떠나지 못하고 창문 밑에 붙박여 뒷집할머니 집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집과 뒷집할머니 집은 평소에도 칼도마 소리며 뒷집할머니의 욕을 즐기곤 할 정도로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프리카 흑인이 미국 가서 평생을 산다고 백인이 되는 겨. 내가 동상을 미워하는 게 아녀. 동상이 일본 사람인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한국 사람이라고 부득부득 위기느냐는 겨. 동상이 일본 사람인 것보다 그것이 나는 더 괘씸하단 말이여.     

일본 것들은 다 그렇게 야비헌겨. 왜 일본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고백을 않고 사람을 그렇게 쇡이고 낙심하게 만든 겨. 그것이 일본 사람 근성인겨, 그런 겨.     

뒷집할머니의 목청이 가장 높았고 장단처럼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어머니를 공격하는 모양새였다.     

이장과 포도밭집 할아버지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선동의 앞잡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졸지에 비열한 일본 할머니로 전락해버린 어머니는 대꾸하지 않고 듣고만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뒷집할머니집까지 쫓아갔지만 워낙 노인들의 공격이 심해서 일단 피하고 보려는 것이었을 수 있었다.     

오늘부로 의자매는 끝난 것이니께 그리 알어. 나도 의리가 있는 사람이어서 거짓부렁 하는 일본 사람하고 의자매는 못하겠어.     

어머니가 뒷집 대문을 열고 나서는데 뒷집할머니의 목소리가 따라나서며 어머니의 등허리를 할퀴었다.     

어머니의 걸음이 휘청이는 것을 나는 목격했고 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주둥이를 찢고 싶었다.     

거기다 꼭대기집 남자는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서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투사였음을 내세우며 소목골이 일본하고는 원수진 사람들뿐이어서 이제 이 동네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온 동네가 반일과 항일로 똘똘 뭉치는 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뛰쳐나가서 저 악마 놈의 주둥빡을 사정없이 갈겨버리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고 어머니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예요. 어머니가 뭘 잘못했다고. 한국 사람은 베트남 가서 나쁜 짓 안 했나.     

나는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시답잖은 편들기에 나섰다. 어머니는 파리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다른 때 같으면 한나절만 빠끔해도 들여다보던 담뱃집 할머니도 포도밭집 할머니도 더 이상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우울증과 침묵의 출발이고 시작이었다.     

- 그것만 해보고 하지. 버리면 어떡하려고.     

내가 수차례 집안을 들락거리며 추가로 황톳물 들일 것들을 수돗가에 꺼내놓자 보다 못한 아내가 한 마디 내뱉는다.     

-.......     

그러나 나는 기왕 시작한 거 낡고 빛바랜 것들을 모조리 황토물 들일 작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양이 많았다. 티셔츠만 족히 열 장은 되고 양말도 열 켤레 정도 됐다. 목욕 가운 두 벌과 서재에서 일하다 졸리면 덮고 자는 대형 면 타월과 물이 빠져서 변색된 이불 홑청 등도 있었다.     

- 당신 목욕 가운이랑 큰 타월만이라도 나중에 해요. 그건 아직 새 거잖아요.     

- 다음에 언제 해. 일 벌였을 때 해버려야지.     

나는 옷감이 충분히 젖도록 함지박 안으로 들어가 발로 밟는다. 이불 홑청과 옷가지들이 황톳물을 빨아들이면서 황톳물은 줄고 잘박잘박하다.     

나는 그대로 한참을 더 밟다가 황톳물이 든 옷들을 하나씩 털어 빨랫줄에 널고 바지랑대를 높이 세운다. 널지 못한 양말과 티셔츠는 햇볕으로 달궈진 섬돌에 펴놓았다.     

마당 가득 황토 빛이 넘실댄다. 어머니와의 불화를 잊을 만큼 마당을 가득 채운 황토 빛이 뿌듯하고 가슴 벅찼다.     

- 햐, 이거 색깔 좀 봐. 기가 막히다. 세상이 하나로 통일되려면 먼저 사람들 마음을 이 황토색으로 물들여야 할 것 같다. 이거야 말로 나라와 나라는 물론 인종과 인종의 구분을 없애주는 색이 아닐까.       

나는 어머니 들으라는 듯 황톳물이 든 빨래들을 올려다보며 부러 더 큰 소리로 외쳐댔다. 정말이지 나는 빨래들이 내뿜는 황톳빛에 반하여 어머니와의 불화를 잊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 좋네.     

의심으로 가득 한 신도였던 아내가 밭고랑 끝에서 빨래들을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비로소 황톳물 들이는 일이 제대로 되어 간다고 믿게 된 모양이다.     

흘끗 흘끗 빨랫줄을 훔쳐보던 어머니는 딸의 추임새에 용기를 얻어 이제 대놓고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남아 있던 황토를 빈 함지박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처마 밑으로 들어가 단지에서 빨간 바가지 가득 소금을 퍼온다.     

- 소금은 왜 퍼 가?     

드디어 어머니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이고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다.     

- 김장 때 쓸 것도 없어. 그 소금이 얼마나 귀하고 비싼 것인지 알기나 하고 퍼 쓰는 건가. 내가 김장 때 쓰려고 몇 년 동안 간수를 빼놓았는데, 그깟 황톳물 들인다고 소금을 바닥내. 당장 갔다 놓게.     

어머니의 목소리에 노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무리 나한테 잘못이 크다 해도 소금 한 바가지 퍼 쓰면서 노인네에게 핀잔을 듣는 것이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내가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로 있을 땐 어머니가 나에게 하대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퇴직하고 소목골로 이사와 어머니와 함께 산 지 3년이나 되었지만 나한테 눈 한 번 흘긴 적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는 것에서부터 사사건건 어머니와 시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나는 의견이 안 맞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내편이었고 나에게 져주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가 작정하고 쓴소리를 퍼부어대는 것이다.     

- 김장 전에 소금 한 포대 사다 놓을 게요.     

나는 소금을 함지박에 쏟아부으며 다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러 웃는 얼굴을 한다.         

- 누가 소금 살 줄 몰라서 그래. 시장에서 파는 소금하고 지금 그 소금 하고 어떻게 같아. 그냥 내뱉으면 그게 다 말이 되는 줄나, 자네는. 남자가 입이 저렇게 가벼우니.     

어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다 퍼부을 기세다.     

- 아니, 엄마. 듣자 듣자 하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막 해. 소금이 소금이지. 그리고 저 사람이 무슨 입이 가볍다는 거야?     

묵묵히 밭일을 하고 있던 아내가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 말 앞세우는 사람은 싫어. 믿을 수도 없고.


아내의 공격에 어머니는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춘다.     

- 아, 글쎄. 저 사람이 언제 그런 적이 있느냐고.     

그러나 아내는 더욱 목청을 높인다.     

- 당신도 그만해. 어른이 한 소리를 가지고........     

나는 수돗물을 틀고 황토와 소금이 잘 섞이도록 휘저어 다시 황톳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에 비해 농도가 너무 약했고 그나마도 남은 옷가지들을 적시기에는 부족한 양이다.     

- 어디 가려고?     

바랑을 둘러매는 나를 보고 아내가 묻는다.     

- 이렇게 서너 번은 해야 된다는데 황토가 많이 모자라.     

나는 호미도 챙기고 삽도 손에 든다.     

- 맨발로 갈 거야. 신발이나 신고 가.     

아내가 황톳발로 나서는 걸 보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황토를 퍼 담고 있는데 아내가 숨을 몰아쉬며 양말과 등산화를 들고 다가온다.     

- 어머니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내는 오히려 어머니 말에 내가 상처를 받게 될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다.     

- 괜찮아. 별거도 아닌 걸 가지고 뭘. 그 소금이 귀한 건 맞잖아. 미리 사다 놓지 못한 내가 잘 못이지 뭐.     

- 당신 성질 급한 건 알아줘야 돼.     

- 그러게. 황토도 좀 더 퍼다 놓고 소금도 사 오고, 그리고 천천히 해도 될 일을.     

- 내 말이. 그런데 어머니하고 무슨 일 있었어? 어머니가 소금 가지고 당신한테 화낼 분은 아니잖아. 어머니는 내 말에 대꾸도 안하던데.     

- 당신 혹시 어머니가 일본 사람인 거 모르고 있었어!     

나는 불쑥 아내에게 묻는다. 더는 복장이 터져서 참고 있을 수 없기도 했다.     

-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어도 또 당신 몸에 일본인 피가 흘러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이해해. 그리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 당신은 묻는 말엔 대답 안 하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 웃음이 해맑아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어머니가 아홉 살 때 당신 외할머니를 따라서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돌아가지 못했데.     

나는 아내에게 어머니에게 들었던 대로 전해준다.     

해방 전에 어머니(아내의 외할머니)를 따라 일본에서 건너온 거며 어머니(아내의 외할머니)가 한국 남자와 재혼했는데 의붓아버지가 어머니(장모)를 심하게 학대를 해서 결국 도망 나와 스무 살 무렵 다시 어머니(아내의 외할머니)와 연락하고 지냈다는 거며,     

그 이후에도 공장생활을 하며 혼자 살았는데 늦은 나이에 아버지(장인)를 만나 중곡동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는 것도,     

호적이 없어서 혼인신고도 못하고 아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가 당시 별을 달고 있던 큰아버지(장인의 형)가 어찌어찌해서 호적을 만들어주었다는 것까지.     

아내가 스무 살 때 아버지(장인)가 돌아가신 건 아내에게 들어 알고 있는 거였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 몇 년 전 부안 삼촌이 호적등본인가 어디에 어머니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없다면서 전화가 왔었어. 이담에 사망 신고할 때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가르쳐 준 적이 있긴 해. 주민등록등본에는 있는 번호가 왜 호적에만 없는지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말 안 했는데 당신한텐 왜 그런 말을 했데. 뒤늦게.     

- 당신 자존심 상하거나 그래.     

- 아니, 전혀. 난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야. 내가 누구보다 일본 사람 싫어하는 거 알잖아.     

사실이 그랬다. 아내는 일본, 이라는 말과 일본 사람이라는 말에 유난히 민감했다. 나는 일본이 싫어, 혹은 나는 일본 사람이 싫어, 라고 하는 말을 나는 자주 들어왔다.     

- 나 때문에 어머니가 곤란하게 됐잖아. 그래서 며칠째 바깥출입도 안 하셨고 나하고 눈도 안 마주쳤어.     

나는 경로당 입당식날 있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 뒷집할머니와 마을 할머니들이 모두 어머니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던 일도.     

- 뒷집할머닌 워낙 마음이 좋으신 분이라 곧 풀릴 거야. 뒷집할머니만 괜찮다 하면 소목골 사람들은 문제 될 거 없고.     

아내는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것 같다.     

- 그러면 다행인데.     

- 정 어려우면 이사 가는 수밖에 없지 뭐.     

우리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 중국집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라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기로 하고 서둘러 산에서 내려온다.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친김에 뒷집할머니와 이장, 포도밭집 할아버지를 모시고 갈 생각이었다.               

멀리서 보니 소목골 노인들이 우리 집 수돗가를 에워싸고 있다. 멀리서도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오후 햇살을 등에 지고 한가로이 들길을 걸어오던 아내와 나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우리가 나타나자 마당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던 노인들이 길을 비켜준다. 아내와 나는 소목골의 사람들의 비웃음과 탄식을 헤집고 수돗가로 다가간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황토를 뒤집어쓴 어머니가 함지박 안에 주저앉아 있다가 나를 바라본다. 황톳물 범벅이 된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동자만 유달리 하얗게 반짝 빛났다.     

황토를 머금은 옷은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작고 여윈 어머니의 윤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동네 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이년은 어머니 따라 한국에 와서 서른이 넘도록 주민등록증이라는 것도 없이 남의 집 살이를 하며 떠돌이로 살았습니다. 늦게나마 산지기 영감 만나서 중곡동 용마산 자락 토굴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불쌍한 내 딸이 초등학교 갈 때까지 이름도 못 올렸습니다.     

뒤늦게 영감 고향에 찾아가서 내 이름도 올리고 딸 이름도 올려달라니까 빨갱이라고 했습니다.     

별 세 개짜리 큰 아주버님이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빨갱이가 되었을지도 몰랐지요.     

함께 온 외삼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 땅에서 빨갱이로 몰려 죽고 거지로 떠돌다가 객사했지만 나는 운 좋게도 호적이란 것을 만들고 중곡동 용마산 자락에서만 사십 년 넘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일본 사람인 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습니다.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솔직히 일본 사람인 걸 숨기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차라리 나도 빨갱이로 잡혀 죽었으면 좋았을 걸 나도 삼촌들처럼 그렇게 되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이제야 듭니다.     

-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미치려면 곱게 미치고, 죽으려면 소리 없이 죽지 황토는 왜 뒤집어쓰고 지랄이여. 여태껏 악착같이 잘 살았잖여.     

뒷집할머니는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 왜 뒤집어쓰긴요. 저 빨래들처럼 나도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싶어서, 그냥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황톳물을 들이는 중이에요.     

사람 나고 나라가 생겼지 나라 나고 사람 생긴 게 아니잖아요. 일본이 나한테 해준 게 뭐라고, 한국이 나한테 해준 게 뭐라고, 나는 두 나라 모두한테 버림받았는데 이제 다 늙어서 형님한테 의자매까지 파토 당해야 해요.     

황톳물로 범벅이 된 어머니 얼굴에 눈물길이 났다.     

- 아이고야.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내가 진즉에 죽었으면 이런 꼬라지를 안 봤을 겨.     

뒷집할머니가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함지박 전두리를 잡고 꾸부정하게 엎드리더니 함지박 속으로 발을 담근다.     

- 그려 그라믄 나도 황톳물 들이고 자네처럼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자연 사람이 되어야 것어.     

뒷집할머니가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 부축을 하려고 했지만 그사이 함지박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세수하듯 황톳물을 퍼서 얼굴에 바른다.     

이번엔 어머니가 당황한 얼굴로 뒷집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 뭘 그러고 보는가. 이래야 자네하고 나하고 의자매 맺은 거 파토 안 날 거 아녀. 이장, 안 그런겨.

뒷집할머니가 이장에게 소리친다.     

- 아, 그려유. 소목골이 언제 사람 내치는 것 봤시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대청호가 삼켰을 적에 우리를 다 받아준 소목골이잖어유. 인자부터 소목골 사람들은 자연 사람으로 만났으니께 자연 사람으로 살어유.       

이장이 덩달아 소리친다.     

- 허허허.     

새벽마다 마을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드는 안개 군단을 물리치고 일당백 위세를 자랑하는 백전백승의 장수, 포도밭집 할아버지가 목청을 높여 너털웃음을 웃는다.     

노인들 사이에서도 웃음 소리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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