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면 Apr 14. 2024

00. 좋은 날

2024/4/7


지난 일요일, 아빠와 함께 엄마를 보러 추모 공원에 다녀왔다.

자가용이 없어 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시내버스로 역까지 간 뒤에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탄다.

추모 공원까지 가는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만 다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이용객이 워낙 적어 좌석도 몇 없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린다.

아빠와 나를 제외하면 승객의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다.

창밖으로 활짝 핀 벚꽃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얼마쯤 갔을까. 앞좌석에 앉은 할아버지 한 분이 반대편에 앉은 친구분에게 꽃이 피었다고 알리며 차창 밖을 가리키셨다. 추정하기론 배꽃 같았다. 여기저기 만개한 벚꽃보다 한곳에 소담히 핀 흰 배꽃이 할아버지는 좋으셨던 모양이다.

한 정거장에 멈췄을 땐 버스 기사님이 운전석에서 나와 할머니의 짐을 내려 주셨다.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이 그 배꽃 같았다.

굽이굽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점점 데워지는 마음을 안고 풍경을 내다보던 때였다.

바람을 쐬러 나오신 듯 의자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흔드셨다.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가 반가워 그 안의 승객들에게 인사하신 걸까.

나는 마주 손을 흔들까 고민하다 결국 용기 내지 못했다.

돌아올 때 혹시라도 다시 마주친다면 꼭 손을 흔들리라 다짐했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역으로 돌아왔다. 아빠와 샤브샤브를 먹고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팔았다. 오래전부터 나의 숙원 사업이던 아빠 안경까지 맞추고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날이었다.

이제야 봄이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