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0
“어머니가 조금 괜찮아지셨어요.”
“오늘은 수치가 약간 나빠졌어요.”
“환자분이 의지가 있으신 것 같아요.”
엄마 상태는 매일 오르락내리락했다. 처음엔 ‘괜찮아졌다’는 말에 뛸 뜻이 기뻤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간호사가 전해 주는 말에는 ‘조금’이 강조되었단 걸. 그 ‘조금’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아니라 하루에 자라는 머리카락, 손톱의 길이처럼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그래서 의지가 있다는 말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 엄마라면 응당 그러리라 여겼으니까. 이렇게 떠나고 싶지 않을 테니까.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얄팍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때 면담 자리에서 만난 의사가 말했다.
“만약 어머니 상태가 호전되면 재활 병원으로 옮기셔야 해요.”
“재활 병원이요?”
“네. 중환자실에서 오래 계셨으니 일상생활을 다시 하시려면 재활을 하셔야 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갔다가 퇴원하면 집으로 모셔 갈 수 있을 줄만 알고 있었다. 잠깐 당황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재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단 걸 금방 알았지만.
“단, 재활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저도 장담을 못 합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도 걸릴 수 있어요. 지금으로선 재활을 하신다고 해도 예전처럼 움직이진 못하실 확률이 크고요.”
그제야 의료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몇 개월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몇 년까지 길어진다면? 내가 정말 엄마를 편히 모실 수 있을까?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그런 물음들 앞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대학생 때였나. 엄마가 입원해 보호자로 하루 일반 병실에서 같이 머문 적이 있었다. 새벽에도 몇 시간 간격으로 간호사가 병실을 돌며 환자 혈압을 재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잠들만 하면 찾아오고 또 찾아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불 삼았던 겨울 롱패딩은 별 쓸모없었다. 두 번 다신 못 하겠다 싶었다.
재활을 도울 수 있느냐는 건 내 삶을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마음 한쪽에선 당연한 의무라고 외쳤고 또 한쪽에선 네가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냐고 비웃었다.
의지. 그건 엄마가 아닌 나한테 필요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