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5
발인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늘이 흐렸고 눈비가 섞여 내렸다. 운구를 담당하신 운전자님은 내게 흰 장갑을 건네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아요. 잘 따라오세요.”
날씨처럼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주로서 잘해 내고 싶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안고 천천히 걸었다.
관을 들려면 남자 네 사람이 필요했다. 아빠, 작은고모부, 외삼촌, 그리고 매제가 도왔다.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외삼촌은 이모에게 ‘바쁜’ 매제를 데려온 이유를 물었다.
“관을 들 사람이 없대서.”
상처가 됐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두 번 본 매제를 우리 엄마는 더 많이 봤고, 그 정도면 반나절 손을 빌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장장 안으로 영영 떠나는 엄마를 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운전자님은 화장이 끝날 때까지 식사를 꼭 하라고 당부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모두가 먹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고, 결국 이모네와 식당을 찾았다.
사촌 동생 아기에 온 신경을 쏟으며 간간이 웃기도 하는 이모네 가족이 보기 싫어 그릇에 고개를 박다시피 하고 식사에만 열중했다.
이런 자리에 새벽같이 오면서 아기를 데려와야 했을까, 그런 옹졸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화장은 예정보다 조금 빠르게 끝났다.
다시 돌아간 곳에서 직원은 화장이 끝난 엄마의…… 뼈를 보여 주었다.
작은고모와 이모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드라마 세트장 같기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꿈꿔 본 적도 없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화장터에서 유골함을 받아 납골당으로 향했다.
몇 장의 서류를 제출하자 접수가 완료되었다.
배정받은 곳이 하필 또 맨 아래에서 두 번째 칸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마주하려면 쪼그려 앉아야만 하는 위치.
엄마 삶의 종착역이 이렇게 낮은 곳이라니.
차라리 보기 힘들어도 맨 위칸에서 내려다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운전자님은 영정 사진의 리본을 떼고 노란 보자기로 감싸 주었다.
친가 어른들과 엄마 지인의 배웅은 아빠가 담당했고 이모네와 외삼촌은 자가용으로 떠났다.
나는 다시 식장으로 가서 장례복을 반납하고 집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창밖으로 눈비가 더 거세게 휘몰아쳤다.
차가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