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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Sep 30. 2024

20. 남겨진 이야기

2022/12/16일 이후


아빠는 꼬박 일주일간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내내 술에 취한 채 고꾸라져 있었다. 꼭 엄마를 따라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난 화가 났다가 걱정됐다가 답답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아빠만의 애도 방식임을 깨달았다.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는 반대로 잘 챙겨 먹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먹었다. 잠은 정신과 약이 재워 주었다. 다시 외주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엄마가 떠나기 전처럼 살았다. 이렇게 멀쩡해도 되나 죄책감이 밀려올 만큼.

엄마가 살던 집을 정리할 때 내가 가지고 나온 건 두 가지였다. 사진과 생일 선물로 사 줬던 여름 블라우스. 사진은 깨끗한 새 앨범을 사서 정리해 넣었고 블라우스는 내 옷장 한쪽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가끔 만져 보았다.

2주쯤 지났던 때였을까. 꽝꽝 언 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생소한 강도의 통증이었다. 거의 기다시피 하여 집에 와서 보니 오른발에 피멍이 들고 붓기가 심했다. 주변 병원이 진료가 끝난 시간이라 그다음 날에야 갈 수 있었다. 밤새 통증에 시달리다가 정형외과를 찾았다. 인대가 조금 찢어져 보호대를 했다. 보호대 한 채로 걷는 건, 버스를 타는 건 말도 못 하게 불편했다. 다리 수술을 여러 번 해서 잘 걷지 못하던 엄마가 딱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같이 걸을 때 좀 더 천천히 보폭을 맞춰 줄걸. 툭하면 택시를 탄다고 타박하지 말걸. 얼마 걷지 않아서 길 한쪽에 주저앉아 먼저 가라고 손짓하던 엄마. 그때 창피해 말고 함께 주저앉아 줄걸. 엄마와의 기억은 그런 식으로 문득문득 마음을 잠식해 갔다.

벌을 받는 건지도 몰라.

그사이 새해가 밝았다. 엄마를 볼 수 없는 첫 새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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