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4
그런 말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건 슬퍼할 시간을 줄여 주기 위함이라는 말. 조문객이 거의 없었는데도 한동안 이리저리 정신이 없었다. 친가 어른들과 아빠 친구, 엄마 지인이 오셨을 때 주류와 술안주를 사 오고 식사 시간엔 배달 음식이나마 대접했다. 여러 물음에 답했지만 가끔 무례하다 느껴지는 말에는 입을 다물었다. 마중 가고 배웅했다.
엄마 집에 들러 잠시 포토 앨범을 가져왔다. 첫 가족 여행에서 찍은 스냅 사진을 모아 편집해 만들었던 사진집. 입관식에 함께 넣을 물건이 있느냐는 직원의 말에 유일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어머니 몸에 상처가 많아요. 얼굴은 최대한 화장으로 가려 볼까 했는데…….”
역부족이었다는 듯 장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화장 대신 엄마 얼굴은 반쯤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쉽지 않았다. 못내 감지 못했던 두 눈이 아주 편안히 내려앉아 있어서. 정말 잠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엄마, 엄마 하고 몇 번 부르면 몽롱한 눈을 떠 응, 왔어? 대답할 듯한.
사진집은 엄마 품에 안겼다. 관의 머리 쪽에 엄마 이름과 내 이름을 매직으로 크게 써넣는 것으로 입관식은 마무리되었다.
밤이 되고 주변 모든 것이 나를 잠깐 놓아줬을 때 엄마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았다. 슬픔은 오로지 내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러움이 발끝부터 찰랑찰랑 차올랐다. 눈물은 여전히 나지 않았다. 목을 맬까 차에 뛰어들까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실행할 순 없었다. 그것마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때의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었고, 해야 할 일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야 편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