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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May 18. 2021

대충은 없다

삶은 원래 고달픈 것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것은 군 시절이었다. 해군 특수부대이니 침투 목적으로 배웠고 그 과정은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다 말 못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경상도 내륙 지방에서 자란 내가 기껏 동네 냇가에서 어린 시절 자맥질해 본 게 다인데 난생처음 본 스쿠버(SCUBA :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 장비를 들쳐매고 물속을 처음 들어갔을 때를 잊지 못한다.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있었다면 udt에 지원하지 않았겠지만) 무작정 뛰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배우는 동안 깊은 바닷속의 캄캄한 시야와 매 순간 귀를 압박하는 수압 그리고 버디(Buddy : 다이빙을 함께 하는 짝)와의 의사소통이 어려움 등으로 위험한 순간을 몇 번이고 겪어야 했다.

UDT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 SEAL) 교육생 시절, 스쿠버 교육 중
UDT BUDS(Basic Underwater Demolition SEAL) 교육생 시절, 스킨다이빙 교육중

스쿠버는 소방관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야 했다. 하지만 군에서 배운 스쿠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왜냐하면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군은 Combat Diving 즉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다이빙이었고 소방은 Search and Rescue Diving 즉 수색 및 구조를 위한 다이빙이었기 때문이다. 장비도 달랐고 기술도 달랐다.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새로운 다이빙 기술을 다시 익혔고 그러기 위해 쉬는 날마다 다이빙 강사를 찾아다니며 배웠다. 내친김에 나는 스쿠버 강사까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더욱 가열하게 배우기 시작했다. 몇 달을 실내 풀장과 바다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물은 편안했다. 기술이 다르고 생소할 뿐이지 20대 거의를 바다에서 보낸 나는 오히려 물에서 노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다고 대충 하진 않았다. 어지간히 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스쿠버는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레저다. 스포츠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모험적인 레저로 분류되는 이유가 그렇다. 까다로운 이론과 힘든 실습동작을 익혀야 겨우 바닷속의 환경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 군 시절 교관들이 그렇게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그것이다. 까딱하면 시체도 찾지 못할 심연의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나의 동작을 익히기 위한 무한 반복이 시작됐다. 5m 실내 풀장을 내 집 드나들듯 했는데 하루에 두 군데를 옮겨 다니며 연습한 적도 있다. 오전은 부산에서, 오후에는 창원에서.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물속에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 물에 젖은 스쿠버 장비는 항상 내 차 트렁크에 있었다. 체력도 좋았고 열정도 넘쳤다.


무엇이 그토록 열심히 하도록 했을까? 단순했다. 대충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일이라면 눈대중이나 남의 어깨너머로도 배울 일이었겠지만 스쿠버는 그게 아니었다. 사람 목숨이 책임져야 하는 스쿠버 강사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런 기술을 현장에서 발휘해야 하는 구조 대원이 되기 위해 소위 '그까짓 거 대~충~'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부터 풀장에 갔다. 혼자서 막상 물에 들어가려고 하려니 막막함도 밀려왔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최고는 안되더라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하자고 혼자서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되었고 훗날 더 어려운 테크니컬 다이빙을 배우면서도 이러한 마음은 여전했다.


지금은 잘하지는 못해도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 듣지 않는 다이버가 되었다. 스쿠버 강사가 되기 위해 온 힘을 쏟아 강사가 되었고 결국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 트레이너까지 되고 말았다. 당연히 소방 구조현장에서도 배운 것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관련 분야 교육에 외래강사나 교관으로 초빙도 되곤 한다. 소방청에 불려가 '수난구조 현장활동 지침서', '인명구조학 수상구조' 같은 전문서도 공동 집필했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소방 후배들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많이 가르치고 있다. 젊고 스마트하고 열정 넘치는 후배를 가르칠 때마다 보람도 느끼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역시 대충 하지 않는다. 가르치려는 자의 욕심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했고 그것이 결국 맞는 길이기에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배우는 후배들은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충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몸소 겪었기에 달리 방법이 없다.


슬쩍 발만 담그는 것은 체질에 맞질 않다. 생각했으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단 생각은 상당히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행동했으면 반드시 결과를 봐야 하고 결과는 위와 같이 나 스스로 만족을 해야 하는 수준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어려움도 있기 마련이다.


쉽게 되는 일도 많다. 지름길이 그래서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도(正道)'만이 결과를 보장한다. 대충 해도 될 일이라면 삶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고달픈 것이고 그 이유는 대충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기에 앞서 내가 그곳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먼저 볼 것이지 결과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을 먼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마음먹었다면 결과를 떠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인생에 대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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