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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Nov 15. 2020

내 삶을 변화시킨 순간

그 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 한참을 일하다 문득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일을 나는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어쩌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

드문드문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무언가 연관된 계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크고 작은 결정적 삶의 이벤트를 겪어왔긴 한데 내 삶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찾는 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이럴 때 표현하는 것이 '굳이 그럴 때를 하나만 말해보라면' 일 것이다.

그런때가 있긴 있었다.


21살 가을에 군대를 갔다.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도망치듯 간 기억이 난다.

IMF라는 어쩌면 나의 삶에 크게 와닿지 않은 사회적 불안은 군대로

도망가기 위한 좋은 구실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군대를 가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었다.

두 번이나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내가 갈 곳은 군대밖에 없었다.


커다란 은빛 군함을 타고 대양을 누비는 상상을 했다.

이거면 대학에 가지 못한 내 처지를 보상해 줄 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배치 받은 곳은 '욕지도'라는 섬이었다.

그 곳의 수병(해군의 일반병)들은 욕지도를 '알카트라즈'라고 불렀다.


지루했다. 매일 섬 안에서 지냈다. 그곳에 해군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난 싫었다. 도망치듯 온 군대가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는 상황실이라는 곳에서 근무했다. 그곳은 이러저러한 해상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었다.(이거 보안에 걸리려나?)


매일 아침 전보 양식으로 들어오는 군사정보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1년 반 정도 생활했을 때였을까?

짧고 굵은 전보 하나를 읽게 된다.


"특수전 요원 모집"


특수전이라...

뭔가 특별한 것인가?

뭐지?

인터넷 검색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사관(지금의 부사관)들에게 물었다.

"특수전이 뭡니까?"

"와? 갈라꼬?"

"UDT 아이가! UDT!"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당최 모르겠다.

선임하사가 구석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UDT에 대하여 친절히 설명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가야 할 곳이라 느꼈다.

당장 가겠다고 결심했다.

선임하사는 당황했다.

나에게 그렇게 오랜 시간 설명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곳에 가면 '반 죽는'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지 않기 위해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병 3호봉의 계급에서 부사관으로 신분 전환 절차를 거치고

4년을 더 그것도 UDT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하기 위해

나는 섬을 떠났다.


그때 그 순간이 내가 지금 소방관을 하고 있고, 먹고 살고 있고, 거기에다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아니었을까?

UDT를 전역하고 그 경력으로 119구조대원에 특채되었으니

그때 나의 결정이 내 삶에 있어 가장 잘 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그럴듯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1999년 가을. 그때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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