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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May 15. 2021

소방관을 살리는 소방관

동료를 구하는 소방관, RIT에 대하여

불이 난 화재 현장에 들어가 보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뜨거운 불꽃보다, 독한 연기보다, 어쩌면 캄캄한 시야는 심리적 위축과 행동의 제약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극한의 공포를 안겨준다.


다시 말해 물리적 요건보다 심리적 요건이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극한의 위험에 처한 인간은 그런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도망치려고 하는데 이것을 '회피 본능'이라고 한다.

공포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이러한 사례는 특히 화재현장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소방관이라고 이런 심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방관들은 오히려 그런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회피 본능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거슬러 이겨내고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소방관들을 저런 위험 속으로 들어가게 할까? 자신의 직업이니 당연히 그러기도 하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1. 보호장비

완벽하지는 않지만 불속에서 몸을 보호해 주는 장비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수백 도의 열을 막아내주는 방화복,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 공기를 공급해 주는 공기호흡기, 시야를 확보해 주는 고성능 랜턴과 열화상 카메라 등등 이런 장비는 소방관들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무기인 셈이다.


2. 훈련

소방관은 위험에 대처하는 적절한 훈련이 되어 있다. 소방관이 되면 소방학교에서 수개월 동안 훈련을 받는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과 전문적인 기술을 익힌다. 물론 매뉴얼과 실제는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우고 나온다. 그리고 실전에 배치되어 선배들과 함께 사고 현장에 들어가 다시 배운다. 마치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아장아장 걷다가 달리듯 적어도 6개월, 길어도 1년이면 '현장'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된다.


3. 동료

절대적이고 가장 중요하다. 내 옆에 동료의 존재는 사고 현장에서 서로에게 큰 신뢰감을 형성한다. 특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재현장에서는 동료가 착용하고 있는 공기호흡기의 점멸등(야광 불빛으로 깜박거리며 자신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불빛)이 보이는 것만 해도 심리적으로 안심이 된다. 불속에서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크다. 이럴 때 내 옆의 동료의 존재는 그런 스트레스를 이기고 불을 끄고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물론 나의 동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속에 있는 소방관 모두가 위험에 빠진다면? 그래서 이들을 구조하는 팀이 별도로 존재한다. 소방관들을 구조하는 또 다른 소방관을 RIT(Rapid Intervention Team)이라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다. 미국의 경우 우수한 구조대원들로 구성된 RIT가 존재한다.


최근 이와 관련된 전문 기사를 보고 우리나라에도 RIT가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소방관이 살려야 하는 사람은 구조 대상자인 민간인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자신의 동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력과 장비의 충원이 뒤따라야겠지만 현장에서 한 사람의 소방관을 잃는다면 그가 살릴 수 있는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함께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는 소방관을 죽게 둘 수 없다.


시도마다 논의가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성은 분명하다.

소방관을 구하는 소방관.

누군가를 살리고 나 역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RIT에 대한 FPN Daily 기사

https://fpn119.co.kr/sub.html?page=2&section=sc87&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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