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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Oct 27. 2020

달라지는 세상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

감성이 인공지능을 이긴다

코로나 때문에 딸아이가 학교 수업을 비대면 온라인으로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학교 간다고 분주할 시간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접속을 하더니 책을 옆에 펴고 앉아 있네요. 엄마가 그러고 들을 거냐고 한 마디 하니 대충 세수하고 머리를 빗어 넘기더니 그나마 깨끗한 티셔츠 하나 걸쳐 입습니다.


곧이어 선생님의 인사 소리가 들리고 이런저런 안부도 묻더니 수업을 시작합니다. 언뜻언뜻 들리는 수업내용이 아주 진지합니다. 선생님이야 물론 준비를 잘 하셨겠지만 질문에 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긴장이 묻어 나옵니다. 딸아이도 바쁘게 필기도 하고, 손을 들고 질문도 하면서 부지런히 수업을 따라갑니다. 초등 4학년 통째로 1년을 날리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진도는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입니다. 어! 어! 어! 하다 보니 주변이 이리도 변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무엇이 마구마구 생겨납니다. 멀리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sns로 안부를 묻습니다. 궁금한 건 검색을 하고 배우고 싶으면 유튜브를 찾아보네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니 오히려 집에 있는 것이 즐겁습니다. 넘쳐나는 콘텐츠에 오늘은 뭘 볼까 고르다 지칠 지경이고요. 이젠 접속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찾아 놓네요. 신기하고, 놀라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다 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일입니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볼거리들이 때론 부담입니다. 남들 다하는 일, 나만 안 하는 거 같은 그런 일들이 버겁기도 합니다. 사부작 나가서 바람이라도 쐴라치면 이 조그마한 기계가 나를 붙들어 앉힙니다. 잠깐만 본다는 것이 온종일이고요. 겨우 나가서 걷기 시작하면 연신 울려대는 알람이 신경 쓰여 걷기 힘들 지경이네요. 한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가 힘드니 자라처럼 길어지는 목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을 무섭게 해치우고 친구들과 논과 밭으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생긴 줄로만 알았습니다. TV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보다가도 친구들이 대문 앞에서 부르기라도 하면 냅다 뛰어나갔습니다.커가면서 보는 세상은 모두 내 몸의 감각으로 느껴져야 진짜로 여겼습니다. 그 시절에 재미라는 것은 더 넓은 곳에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냄새가 났고, 손으로 만져졌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억지로 그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것은 다릅니다. 분명 더 새롭고 더 많은 세상을 보는데 가슴에 남지를 않습니다. 보는 그 순간의 희열과 즐거움뿐 액정이 닫히고 나면 지끈 한 두통만 남습니다. 꾸역꾸역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만 오히려 가슴은 더 휑합니다.


코로나라는 놈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강제로 밀어 넣은 듯합니다.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분명 더 좋은 세상으로 가려는 움직임으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직접 만나서 보고, 얘기하고, 듣고 하는 '실제'는 멀어져 갑니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법이 무엇이든 가슴으로 느껴지는 감성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생소하지만 분명 모니터 화면의 사람이 내게 주는 감성이 있을 겁니다. 그 마음이 전해진다면 작은 액정 속의 세상도 적응하기 나름이겠지요. 멀리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고, 손가락으로 쉽게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정말 편한 세상이긴 하지만 그 세상이 주는 편리함과 함께 원래 우리가 오래전부터 주고받았던 감성이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즘 온라인으로 글쓰기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말로 하며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지요. 직접 만난 적 없는 분들이지만 금방 친해집니다. 직접 보지 않는데도 말하고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마음을 나눕니다. 감성을 느낍니다. 모니터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고 합니다. 직접 만나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짐을 느낍니다. 달라진 세상이 주는 편리함에 감성까지 더해집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그리고 내 아이가 액정 속의 세상을 보되, 인간만이 누릴 수 감성의 세계도 함께 보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하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놓여있지 않더라도 액정 속의 사람들과 액정 속의 세상과도 감성이 나눠지길 바랍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만 세상과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그것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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