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항해사의 이야기
나는 항해사다. 3만 톤의 컨테이너선을 운항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바다는 낭만과 힐링의 공간, 여행지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이곳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는 일터가 바다라는 공간이었을 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다’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일을 했어도 글을 쓰고 싶어 했을 나다. 배를 타면서 생긴 생각을 글로 쓰고 싶었고, 글 쓰는 게 좋았다. 쓴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본질을 알면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비본질이 된다. 학벌, 외모, 재력이 어떻든 내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부산에서 태어났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든 나는 나일 뿐이다.
사회에서 나는 ‘27살’ ‘여자’로 표현되겠지만
진정한 ‘나’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
진정한 나를 찾으려면 나를 둘러싼 정의를 내려놓고 나만의 언어로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쓰는 글들은 모두 그 과정으로 생각하려 한다.
인생에서 시련은 파도처럼 왔다. 중요한 건 시련을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처음 항해사가 되고 나서 생각했다. 내 앞으로 밀려드는 온갖 책임과 의무가 너무 무겁다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내가 잘 감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도망칠 수 없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부딪히니 해냈다. 내가 생각한 한계를 넘었다. 또 다시 시련에 부딪히고 또 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중요한 건 시련의 크기가 아니었다.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 그게 가장 중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항해사라는 일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결국은 일어설 것이라는 용기를 얻었다.
내가 탄 배는 장애물 하나 없는 바닷길을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는 일 년의 절반을 배에 갇힌 채 살아간다. 오로지 바다, 바다, 바다만을 바라보는 동안 외로움이 도둑처럼 몰려왔다. 나는 왜 항해사가 되었을까 하는 끊이지 않는 질문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의 위압감.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별반 다를 것 없는 각박한 현실 앞에서 어찌 해야 할지 몰라 흔들리는, 아직은 인생에 서툰 항해사의 일상을 전달하고 싶다. 땅과 바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다를지라도 고뇌의 뿌리는 한 몸이지 않을까.
우리가 끝끝내 쓰러지지 않으려면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
비록 고된 하루를 보내야 할 운명 앞에 놓여있을지라도.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덕에 '항해사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책으로도 여러분과 만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