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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김승주 Aug 08. 2019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

바다가 던진 질문


Port to port



바다에서 배와 배가 만나 서로의 항로를 교신할 때는 간단한 몇 마디와 신호음이 전부다.


“Port to Port.”


Port는 왼쪽을 말한다. 서로 좌현을 보며 지나가자는 말이다. 선수를 서로 마주하고 있다면 서로 우현으로 조금만 틀면 좌현 대 좌현으로 지나갈 수 있다. 반대로 오른쪽은 Starboard를 사용한다. 따라서 우현 대 우현으로 지나가고 싶다면 'Starboard to Starboard'라고 말하면 된다.


배들이 지나다니는 바다 위는 교신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무전기에서 신호 하나가 잡힌다.


“This is KMTC PORTKELANG. Port to Port.”


상대가 답한다.


“Roger, Port to Port.”


세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보이는 길이고, 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길이다. 

두 길은 분명 존재하지만, 두 길이 향하는 방향과 거리는 차이가 있다. 보이는 길에는 이정표와 가로등이 세워져 있다. 따라만 갈 수 있다면 큰 문제 없이 목표 지점에 다다른다. 학교가 그렇고, 취업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다. 할 일을 하다 보면 이정표들은 어느새 내 옆을 스쳐 가며 방향을 지시한다. 보이는 길은 모두의 길이며, 모두의 방향이다. 옳고 그름의 길도 아니며, 합리와 부조리의 길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모두의 길, 나 이전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길이기도 했다.




바다 위 지금의 내 길 역시 보이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이 길이 종종 흐려지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러다 다시 나타난다. 모두가 걷는 길을 따라 왔는데, 어느 순간 내가 보이지 않는 길 위에 들어섰음을 서늘하게 느낄 때가 있다. 이 서늘함은 두려움인 동시에 피부의 솜털을 곧추세우는 흥분이기도 했다. 


길이 사라질 때 면 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가.’


보이는 길 위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필요치 않았다. 마음이 편했고, 적절히 돌아오는 보상은 그만큼의 자유 역시 보장해줬다. 급여 액수만큼의 세상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지금도 싫지 않다. 매체에서 말하는 꿈이라는 걸 꼭 꾸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정도의 행복과 만족이면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서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편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그러니 질문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항해하는 내내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길. 보이지 않는 그 길이 내게 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나는 아직 정확히 설명하지도, 설명할 만큼의 깊이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런데 이날부터 문득문득 언젠가 바다에서 만났던 별고래를 떠올리게 되었다. 알 수 없으나 어쩌면 그리움 같은 감정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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