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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김승주 Jul 25. 2019

내 눈으로 직접 본 돌고래

돌고래로 만든 오작교


돌고래, 실제로 본 적 있나요? 


평온한 바다 한 가운데에 갑자기 큰 물결이 일렁였다. 잠잠해지더니 다시 한 번 출렁. 항해사는 배 주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민감하다. 어선이나 어망일 경우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결이 이는 곳을 주시했다. 순간 가뿐하게 뛰어오르는 회색 몸뚱이.


‘아, 돌고래다!’


당직을 서다 보면 돌고래 떼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등과 등지느러미가 보였다 안보였다 헤엄치며 이동하는 것이 보통인데, 흥을 주체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오르는 돌고래가 무리 중 꼭 한 마리씩은 있다. 보통은 3~5마리의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돌고래 다섯 무리 정도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같이 다닌다. 어떤 때는 배 주위가 돌고래로 가득해 바다 위가 아니라 돌고래로 만든 오작교를 건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경이롭다. 

신기한 건 대부분의 돌고래 떼들이 배를 통과해 지나간다는 점이다. 배와 나란히 헤엄칠 수도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배 밑으로 지나가는 이유는 뭘까? 배와 부딪칠 위험도 있는데 말이다. 선임사관 분들은 돌고래가 배와 노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자기들보다 백 배는 더 큰, 재미없는 딱딱한 배와 논다고? 말도 안 돼.’ 그러던 어느 날, 배의 선수부인 폭슬(forecastle)에 갔다가 이 말이 사실임을 목격하게 되었다.


배가 바다에 잠기는 앞부분은 파도의 마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볼록하게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를 볼

보스 바우(bulbows bow)라고 부른다. 폭슬을 돌아다니다가 무심결에 볼보스 바우를 보았다. 그런데 볼보스 바우 앞에서 열 마리 정도의 돌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뜻 보면 배가 돌고래를 쫓고 돌고래는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 위험한데!’ 배의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17.5 노트. 시속으로 따지면 32킬로미터 정도. 차와 비교하면 느리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바다에서 이 정도면 꽤 빠른 편에 속한다. 어선이 어망을 끌고 갈 때 3~5노트, 보통 선박은 10노트나 12노트로 항해한다. 바다에서 20노트 이상으로 다니는 선박은 거의 볼 수 없으니 17.5 노트는 빠른 편이다.



그런 배 앞에서 여러 마리의 돌고래들이 헤엄치고 있다니! 


돌고래가 자칫 스피드를 늦추었다간 바로 뒤에 있는 배와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 걱정과는 다르게 돌고래들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물속에서 유유자적 가뿐히 이동하는 느낌. 육중한 배는 물살을 가르는 것이 버거워 보였지만 돌고래는 자신들의 구역에서 신선놀음을 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배의 속력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기도 하면서 배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논다는 말이 맞았다.


순간 배 앞에서 헤엄치던 돌고래 중 한 마리가 이탈했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한 마리도 옆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 마리씩 사라지더니 결국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때서야 눈치챘다. 돌고래들은 누가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열 마리로 시작해 힘들어진 돌고래는 하나씩 포기하는 방식으로 최후 승자를 가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돌고래는 시합이 끝났음에도 자신은 아직 더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몇 마리만 더 있었으면 정말 오작교 같았을 모습


네 마리가 동시에 뛰어오를 때의 쾌감이란!


예측 불가능한 이곳


난생처음 돌고래들의 귀여운 경주를 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돌고래를 보는 것 자체도 신기했지만 이렇게 빨랐다니. 그리고 배를 두고 사람이 하듯 장난을 칠 줄이야. 돌고래 떼들이 배를 통과할 때 행여 다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직접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돌고래가 배와 논다는 말이 맞았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이었고 생동감이 넘쳤다.


바다의 세계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존재들 덕분에 이곳이 생각보다 더 활기차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다라는 무한의 세계, 그 중심을 뚫고 나가는 배, 그리고 돌고래.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할 수밖에. 

또 내일은 어떤 바다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또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될지 하루하루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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