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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김승주 Aug 21. 2019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감사한 순간들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


항해를 하며 물밀 듯 차오른 외로움을 육지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며 차근차근 지워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한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공통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난 한 주간 감사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지난 한 주 동안 감사한 일이라...’


바다 위에서와는 다르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하루들을 회상해보았다. 

드디어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함께 장을 보러 가고, 저녁에는 아빠가 깎아주는 밤을 먹으며 가족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친한 친구가 휴가를 내고 집에 놀러 와 온종일 누워서 이야기하며 빈둥거렸다. 집에서 나와 주변을 걸어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색 산과 나무들. 미미한 진동이 없는, 가만히 밟아볼 수 있는 흙의 감촉. 싱그러움에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며 ‘이게 땅의 향기지’ 하며 흡족해했던 순간들.



조금 걸으니 어느새 시내에 닿았고 6개월 전과 달리 새로운 가게들이 즐비한 것에 놀라는 한편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찬 분위기에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다양한 커피 중 좋아하는 맛을 골라 먹을 수 있었고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을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지난 한 주간 있었던 감사한 일들을 모두 말한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었다. 머릿속으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뭉클해졌고 그것마저도 감사했다.


이 모든 감사함을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느끼고 있는 감정.


“저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감사해요.”



순간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졌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배를 탄 후 그 전엔 없었던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전지적관찰자 시점이 되어 보는 것.


휴가 중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가끔 말하고 있는 나에게서 벗어나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가 되어 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보이는 잔상. 어둡고 외로운 바다, 유일하게 방안을 밝히는 조그마한 전등 앞에 앉아있는 한 사람. 그리고 지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 짓고 있는 한 사람. 관찰자 시점의 결론은 늘 정해져 있다. 


아,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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