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생활이 준 선물.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배를 타면 가족들, 친구들과 떨어진 채, 고립된 공간에서 육지와 단절된 채 살아야 한다.

육상 근무를 하는 친구들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퇴근하고 친구랑 술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지만, 배 안에서는 돌아갈 곳이 내 방밖에 없다.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연애하기도 쉽지 않아서, 장거리 연애를 힘들어하는 연인 때문에 배를 그만 타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탱커선의 화물작업을 총괄하는 일등 항해사가 될 때까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배를 타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했다.

일등 항해사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주고, 6년간 배를 계속 탈 수 있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 준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여행’이었다.


항해사의 장점 중 하나가 일반적인 직장인들에 비하여 긴 휴가를 받는 다는 것인데, 2-3개월의 휴가 기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꿈꾸기 힘든 일이다.

대한민국의 근무환경이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일주일 연속으로 휴가를 내는 것도 직장 상사 눈치를 보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2-3개월의 휴가 기간동안 배낭여행을 가거나, 승선 기간 중에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항해사만이 가지는 큰 특권이다.


나는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배낭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다.

첫 휴가 때는 유럽, 두 번째는 터키, 세 번째는 태국과 라오스, 네 번째는 쿠바, 다섯번 째는 발리, 여섯 번째는 말레이시아로 배낭여행을 갔다.

휴가 때마다 한달씩 배낭여행을 갔고, 배를 내리기 2달 전부터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들떠 있었다.


나만의 취미 활동을 가지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하게 해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생산적인 취미활동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거 같다.

승선을 하기 전에 다음 휴가 때는 어디로 여행을 갈지부터 생각하고, 승선기간 중에 여행을 갈 나라의 문화,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여행의 즐거움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배를 타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내가 항해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나라에 여행을 갈 수 있고, 항해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배를 타니, 일에도 열정이 생기고 배 안에서 사람들과도 웃으면서 잘 지낼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시절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세계가 정말 넓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배를 오래 타게 되면 자기만의 고집과 생각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여행을 통해서 내 사고와 세계관도 넓어진 것 같다.


수 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쿠바’다.

쿠바는 처음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난 곳이기도 하고, 가장 멀었던 여행지였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멕시코로, 멕시코에서 쿠바로 환승을 했다. 가는데 만 30시간이 걸렸다.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쿠바스러운 분위기’에 동화속의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속에서나 본 듯한 올드카와, 낡은 건물들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그 음악에 맞추어 허름한 테라스에서 즐겁게 춤추고 있던 쿠바 사람들.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되는 광장에 모여 인터넷을 하고 있던 사람들.

바에서 우연히 만난 오스트리아 사업가 할아버지와 3일간 여행을 했던 기억.

수압이 약해서 샤워기 물도 줄줄 나오고, 더운 날씨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가난하지만 가진 것에 만족하고, 춤과 음악을 사랑하던 쿠바인들의 긍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쿠바는 특별한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모든 여행지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남는 것은 결국 추억 뿐이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젊은 시절 특별한 기억을 남겨준 모든 여행의 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다.

6년간의 승선기간 동안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것들 중 하나가 여행이 남겨준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지금도 바다위에서 가족과 떨어진 채, 해운의 최전선에서 수고 하고 계시는 해기사분들이 생산적인 취미 활동을 통하여 고된 승선생활을 잘 버텨 나가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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