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 생활 6년, 일등 항해사의 목표를 이루다.

24살 배를 타기 시작해서,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일등 항해사’가 되는 것이었다.


실습 항해사에서 3등 항해사로, 3등 항해사에서 2등 항해사까지 20대의 대부분을 바다 위에서 보냈고,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힘든 일도 많았다.

3등 항해사로 첫 탱커선에 승선해서 탱커맨들의 텃세에 시달리며, 적응하기 힘들면 벌크선으로 언제든지 돌아가라는 일항사의 말에 오기로 버텼고, 2등 항해사로 석유화학제품선에 승선했을 때는 분노조절 장애로 사관들에게 폭력과 욕설을 하는 선장 때문에 고통스러운 승선생활을 보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상태로 내 정강이를 걷어 찼는데 선장님의 발가락이 꺾여서 아파하던 선장을 보며 고소해하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누구한테 호소할 곳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모든 힘든 순간 속에서도 배를 계속 타게 해주었던 원동력은 ‘반드시 1등 항해사는 해보고 나서, 배를 그만 탄다’ 라는 목표 때문이었다.


탱커선의 1등 항해사는 다른 선종에 비하여 더 많은 책임감과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탱커선이 존재하는 이유인 석유를 운반하는 업무의 총괄 책임자이며,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여 석유를 적재하거나 양하할 때 모든 작업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선이나 벌크선은 항구에 기항하면 터미널이 주도가 되어 화물작업을 진행 하지만, 탱커선은 일항사가 주체가 되어 화물 작업이 이루어진다.

초대형 유조선이 석유를 적재하고 양하하는 데는 각각 3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3일 동안 일등 항해사는 화물 작업 컨트롤 룸이라는 곳에서 24시간 대기하며 선박의 펌프를 통하여 석유가 잘 이송되고 있는지, 석유가 이송되는 선박의 파이프라인 및 기기 등에는 이상이 없는지 관리 감독 해야 한다.

화물 작업이 진행되는 2-3일간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24시간 긴장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화물 작업 계획도 1등 항해사가 수립하기 때문에 ‘탱커선의 꽃’은 1등 항해사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밤을 새워가며 화물 작업을 사고 없이 수행하는 1등 항해사님들을 보면서 나도 꼭 프로페셔널한 1등 항해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승선한지 5년 차 되던 해에 나는 초대형 유조선에 2등 항해사로 승선하게 된다.

참 운이 좋았던 게 이 배에서 3등 항해사 때 모셨던 선장님과 다시 만나게 된다.

선장님은 첫 탱커선에서 고군분투 하던 시절, 주말도 없이 일하던 나를 예쁘게 봐주시고 2등 항해사 업무도 배울 수 있게 배려해 주셨던 훌륭한 인품의 베테랑 선장님이셨다.

선장님은 진급을 앞둔 해기사들이 상급자 업무를 배우고,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선장님의 배려 덕분에 나는 업무 시간이 끝나면 1등 항해사를 따라 다니며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에 승선 중이던 1등 항해사는 곧 휴가를 갈 예정이었고, 나는 1등 항해사로 진급 해서 업무 인수인계를 받게 되었다.


1등 항해사가 되어 첫 화물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낸 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다.

쿠웨이트에 석유 30만 톤을 선적하러 기항하였는데, 도착하기 전 날 새벽까지 화물 작업실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긴장감에 잠도 설쳤었다.

항구에 도착하면 터미널과 화물 작업을 협의하여야 하고, 내 지시에 따라 선박에 석유가 정확한 양이 들어올 수 있고, 석유가 유출되어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막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선장님의 배려로 여러 번 실습을 해보았지만 막상 내가 1등 항해사가 되어 직접 화물 작업을 지휘하려고 하니 그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화물 작업실에서 3일간 꼬박 밤을 새우며, ‘석유 30만톤 정확하게 실렸습니다. 출항 준비 해주세요’라는 사우디아라비아 화물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긴장이 사르르 풀리면서, 내가 대한민국이 하룻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운송하는 구나’라는 성취감과 자부심도 느꼈다.


선박이 출항을 하고 화물 작업실에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으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선장님께서 ‘수고 많았다. 맥주 한 잔하게 방으로 올라오라’고 하셨고 선장님께서는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준비하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 너는 탱커선의 꽃인 1등 항해사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라”

선장님은 첫 화물 작업을 마치고 뿌듯해 하던 내 마음을 잘 아신다고 하면서,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 주셨다.


1등 항해사가 되기 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게 내 스스로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남들에게 치켜 세울 만한 대단한 업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해기사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얼마나 고군분투 하고 있고, 수출입의 최전선에서 가족과 떨어진 채 수고 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좋겠다.

해기사와 항해사라는 직업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다. 보통 배를 탄다고 하면 ‘고기 잡는 배냐?’라고 물어보는 게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대한민국은 해운업 세계 7위, 조선업 세계 1위의 해양 강국인데 반해, 해운과 선박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은 다른 해운 선진국가들에 비하여 너무나 무지한 편이다.

해운강국인 노르웨이와 영국에서는 선원들은 최고의 사회적 대우와 존경을 받고, 필리핀에서는 선원들이 입국하는 공항 통로가 따로 설치되어 있다.

해운의 기본은 선박이고, 선박을 잘 아는 유능한 해기사들이 해운의 각 분야로 진출해야 대한민국 해운만의 경쟁력이 생긴다고 본다.


노르웨이와 영국 등 전통의 유럽 해운 강국들은 자국 선원의 맥이 끊긴 지 오래다. 해운 강국인 일본도 젊은이들이 배를 타려고 하지 않아 필리핀, 인도 선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젊은이들의 승선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군대 의무 승선기간만 마치면 배를 그만 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승선을 짧게 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은 본인의 자유 선택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후배들한테 바라는 점은 해기사로 승선생활을 시작하였다면 일등 항해사,기관사까지는 꼭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박의 실무를 총괄하는 직책까지는 승선을 해야 선박의 전문가로 인정 받을 수 있고, 배를 그만타고 육상에서 취업을 할 때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나만의 장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나의 승선 생활기를 마무리 하며, 지금도 바다에서 고생하시는 해기사분들의 안전운항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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