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돌이켜봐도 돌이킬 수 없는 일들.
최근에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조금이라도 옷에 튈 위험이 있는 메뉴다 싶으면 꼭 앞치마를 착용한다. 처음엔 앞치마의 중요성을 몰랐었다. 그냥 보여주기 식 도구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요리하다 티셔츠를 몇 번 더럽히고 나서야 내가 앞치마란 친구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치마는 빨래할 때 고생하지 않도록 내 옷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였다.
옷에 튄 김칫국물 같은 것들을 지우려 노력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했던 많은 후회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제는 김칫국물 정도는 지우려고 노력하면 지울 수는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생활하다 보면 참 좋아하는 옷이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못 입게 돼서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가끔 온다. 그럴 때마다 많은 후회를 했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좋아하던 옷이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참 한심하게 여겨지곤 했다.
어쩌면 많은 일에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어쩌다가 잘못되어버린 일들을 앞에 두고 내가 조심했어야 했어,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어,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후회하고 자책하며 이미 슬픔에 빠져 힘든 나를 야단치고 몰아세우기만 했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세상은 그런 곳이니까 이런 상처를 받게 되는 것도 미리 조심하지 못했던 네 탓이라고 혼내면서 나는 나를 참 미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나 자신이 소중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를 몰아세웠다.
살다 보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삶은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하고 나는 모든 불행을 막아낼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생긴다. 티셔츠를 버리고 새로 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 버린 일을 계속해서 돌이켜보며 후회해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나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해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털어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요리를 할 땐 꼭 앞치마 친구와 함께해야겠다, 그렇게 반성하고 얼룩진 티셔츠와 이별한 후 다음으로 넘어가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에 드는 옷이 눈에 보일 것이고, 그 옷을 즐거운 마음으로 입고 다닐 것이고, 또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 옷과도 이별하게 될 것이다. 살다 보면 그렇게 소중한 것들과 만나고, 함께 즐거워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돌이켜보며 아파하고, 슬퍼하고만 있다면 다시 또 다른 소중한 것이 찾아왔을 때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후회와 원망도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것이 내게 찾아온 불행을 털어내는 방법인 것 같다. 그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슬프면 슬퍼하고,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된다. 그렇게 털어내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인생은 계속 흘러갈 것이고, 흘러가는 동안엔 또 새로운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