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줘야 상대방도 선택할 수 있다.
서울엔 오르막길이 참 많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만 해도 남산이나 우장산, 인왕산 같은 산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서울을 둘러싸고는 관악산, 북한산 등의 제법 험난한 산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전부터 배산임수에 따라 산과 강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무거운 짐이라도 들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날이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싶을 때도 있다. 보따리를 이고 짚신을 신은 채 이 언덕을 넘어 다녔을 선조들을 생각하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 언덕길들 덕분에 우리 동네엔 고지대에 위치한 아파트가 많다. 매번 그 끔찍한 오르막길을 오르내린다는 건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인지라 아파트 단지 안에는 대체로 평지와 아파트를 이어주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동네에 산이 있다 보니 산길 따라 산책로를 만들어놓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 근처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위치 해 있다. 나는 산책하러 공원에 갈 때마다 그 학교들을 보며, 학생들이 겪어야 할 등하굣길의 험난함에 대해 측은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험난한 환경에서도 곧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 적응하는 것이 또 동물의 본능이 아니던가.
그건 얼마 전 공원에 갔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산책하던 도중 길을 잃어서 한 아파트 단지 쪽으로 내려오게 됐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나 단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엘리베이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타고 내려가면 되겠구나 싶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는데 공지 게시판에 ‘입주민 외 사용 금지’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근처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험난한 오르막길을 피해 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곤 했던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려면 돈이 들기 마련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는 데는 그만큼의 전기가 사용된다. 그리고 이 전기료는 입주민들이 공동해서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입주민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이 엘리베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다면 입주민들은 타인이 이용한 전기료마저 부담하게 되지 않는가. 불특정 다수를 위해 내 돈이 쓰인다는 건 투철한 봉사정신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입주민 외의 사람들에 의해 얼마의 전기료가 더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었다.
하지만 경고문에는 실질적인 '규제'의 효과는 없다. 그렇다면 이 경고문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쩌면 누군가는 경고장을 읽고 ‘어쩌라고.’라는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엘리베이터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경고장을 보고 멈칫했다. 원칙상 내가 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경고장을 봄으로써 자각한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안에서 양심 알고리즘이 작동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한다고 한들 누가 나를 잡으러 오거나 벌을 줄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경고는 어떤 일에 대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라는 걸 상대방에게 인식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그 일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각시킨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개개인의 윤리의식과 상관없이 그 행동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사람들은 본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을 취할지 말지를 선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조금은 더 평화로운 사회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상처 받는 상황이 생긴다면 명확하게 “너는 지금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상대는 나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심, 포용력 등에 따라 그 행동을 계속할지 멈출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나도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어나갈지 정리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몰라주는 걸로 상대방을 탓하면 관계는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상대가 나에 대해 모른다면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이해할 마음이 없거나, 이해했음에도 나를 외면한다면 그 관계는 거기까지인 것이다. 관계의 가치란 결국 이 포인트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