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불행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다 묻어놓고 애써 외면하던 것들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모서리로 나를 다시금 찌를 때가 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상처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가 된다. 그렇게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걷다 보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원래 사는 건 다 이런 건가 보다 하며 그냥 이 정도는 내가 버텨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꾸 가시에 찔리는 발이 너무 아파 주저앉고 나서야 나는 내가 걷고 있던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억울했다.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내 주변 환경이, 나에게 일어났던 안 좋은 사건들이 내가 이렇게 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내가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 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 앞에 깔려버린 가시밭길을 앞으로도 평생 걸어야 할 것 같아 두려워졌다.
나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상처들이, 나를 찌르는 가시들이 그저 과거일 뿐이라니, 시간은 지나갔지만, 과거가 남긴 상처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과거의 기억이 건드려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발바닥을 파고들며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 ‘지금 네가 불행하다면 그건 결국 지금의 네 책임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일어났던 불행들에 의한 상처가, 이 고통이 내 책임이라고?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내게는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불행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행을 버텨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 나를 탓하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컸다. 그렇기에 지금의 불행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자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도, 내 불행이 내 책임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 와닿기 시작했다. 나에게 상처를 남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상처에 시달리기보단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이다. 내가 상처를 받은 건, 가시밭길을 걷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과거의 상처들 때문에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지금, 이 길에서 벗어날 것인가 계속해서 이 길을 걸을 것인가는 온전히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이 가시밭길로 밀어버린 사람들이 있었으니,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당연히 나를 이 가시밭길에서 꺼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나 스스로 가시밭길에서 빠져나올 생각은 못하고, 여기서 구해줄 누군가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행복도 불행도 내 통제권에서 벗어난 인생에서 나는 너무나 무력한 존재였다. 내가 가시밭길에서 벗어나는 걸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해도 결국 가시밭길에서 벗어나려면 내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벗어나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지 않는다면 결국 좋은 인연에서조차 또다시 상처가 반복될 뿐이다.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억울해지기도 한다. 마치 내 잘못이 아닌 일을 덮어쓰고 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건 모두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원망하고 욕하는 걸로 이 길에서 벗어날 힘이 조금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원망하고 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내가 피해자라고 해도,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에 머무르면 내 삶은 피해자로 끝나게 된다. 스스로 삶의 방향키를 다시 잡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야만 피해자라는 위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피해자로 존재하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방향을 틀고 나를 아프게 하는 가시밭길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피해자가 내 마지막 정체성이 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