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시밭길에서 벗어나기

지금의 불행은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by SEAN


살다 보면 마음속에다 묻어놓고 애써 외면하던 것들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모서리로 나를 다시금 찌를 때가 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상처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가 된다. 그렇게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걷다 보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원래 사는 건 다 이런 건가 보다 하며 그냥 이 정도는 내가 버텨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꾸 가시에 찔리는 발이 너무 아파 주저앉고 나서야 나는 내가 걷고 있던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억울했다.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내 주변 환경이, 나에게 일어났던 안 좋은 사건들이 내가 이렇게 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내가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 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 앞에 깔려버린 가시밭길을 앞으로도 평생 걸어야 할 것 같아 두려워졌다.


나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상처들이, 나를 찌르는 가시들이 그저 과거일 뿐이라니, 시간은 지나갔지만, 과거가 남긴 상처들은 내가 걸어가는 길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과거의 기억이 건드려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내 발바닥을 파고들며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 ‘지금 네가 불행하다면 그건 결국 지금의 네 책임이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일어났던 불행들에 의한 상처가, 이 고통이 내 책임이라고?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내게는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불행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행을 버텨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 나를 탓하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컸다. 그렇기에 지금의 불행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자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말도, 내 불행이 내 책임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 와닿기 시작했다. 나에게 상처를 남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상처에 시달리기보단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이다. 내가 상처를 받은 건, 가시밭길을 걷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과거의 상처들 때문에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지금, 이 길에서 벗어날 것인가 계속해서 이 길을 걸을 것인가는 온전히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이 가시밭길로 밀어버린 사람들이 있었으니,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당연히 나를 이 가시밭길에서 꺼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나 스스로 가시밭길에서 빠져나올 생각은 못하고, 여기서 구해줄 누군가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행복도 불행도 내 통제권에서 벗어난 인생에서 나는 너무나 무력한 존재였다. 내가 가시밭길에서 벗어나는 걸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해도 결국 가시밭길에서 벗어나려면 내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벗어나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지 않는다면 결국 좋은 인연에서조차 또다시 상처가 반복될 뿐이다.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억울해지기도 한다. 마치 내 잘못이 아닌 일을 덮어쓰고 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건 모두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원망하고 욕하는 걸로 이 길에서 벗어날 힘이 조금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원망하고 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내가 피해자라고 해도,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에 머무르면 내 삶은 피해자로 끝나게 된다. 스스로 삶의 방향키를 다시 잡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야만 피해자라는 위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피해자로 존재하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방향을 틀고 나를 아프게 하는 가시밭길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피해자가 내 마지막 정체성이 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엘리베이터의 경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