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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화났다

by 조직실험실


더 좁아진 문

한 때는 ‘대기업 공채 시즌’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 채용박람회에는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몰렸고, 합격자 발표는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풍경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025년 한국기업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중 올해 신입을 뽑겠다고 밝힌 기업은 60.8%에 불과했습니다. 절반 가까운 회사가 “신입 채용 없음”을 선언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더 충격적입니다. 대졸자 중 취업을 하지 않거나 ‘쉬고 있다’고 답한 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채용 인원이 가뭄에 콩나듯 나오고, 그것조차 '중고신입', '경력' 위주의 수시 채용으로 흡수되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좁아진 문을 통과해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변 친구들이 워낙 취업을 못해서 회사 얘기를 편하게 꺼내기도 어려워요." 라며 벅차면서도 묘한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주변의 모든 부러움을 사고 바늘구멍을 통과한 요즘 주니어들...대기업에 잘 적응하며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을까요?


의외로 회사는 그들에게 기대만큼의 기쁨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어와서도 지옥, 몰입도는 바닥으로

최근 우리 회사에서 구성원의 세대별 몰입도를 살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치로만 보면 90년대생은 기성세대에 비해 절반 이하의 몰입도,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조직에 거의 마음을 붙이지 않고 있는 세대라는 뜻입니다.


특히 90년대생은 ‘회사 비전에 대한 신뢰’‘인정·보상'에 대한 만족이 가장 낮았습니다. 기성세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용하는 영역에서, 90년대생은 압도적인 불만을 드러냅니다. 바늘 구멍을 뚫고 입사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얻는 만족은 바닥을 치고 있는 셈입니다.


90년대생이 뿔난 이유

왜일까요? 이유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대기업은 여전히 위계와 시스템과 제도로 돌아갑니다. 나이나 연차가 업무 분배와 성과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신입사원은 자동적으로 ‘막내’의 자리에 고착됩니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주요한 전략 정보도, 성과 기회도, 중요한 고객이나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이런 위계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존재하는 구조였고,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연차별, 경력별 업무 위계는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구조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차별 인원 비율입니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지금 완벽에 가까운 역피라미드 구조로 인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도 차부장급의 시니어가 전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제 저성장, 대기업 채용 인원 감축, 유연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노동 시장 등 복합적인 요소가 만들어낸 역피라미드 속에서 90년대생은 '소수의 막내'를 담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운이 나쁘면 입사 후 10년 가까이 팀 막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이 조직에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일은 제가 더 많이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선배들이
제 연봉의 두 배를 가져가는 걸 보면
전혀 일할 맛이 안 나요.

문제는, 90년대생들은 과거 세대처럼 ‘간판’이나 ‘복지’만으로 존버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공정성에 민감하고, 성장의 기회에 훨씬 집착합니다. 회사라는 안정된 울타리보다 '나의 성장 곡선'을 더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죠.


HR 세미나 풍경 – Z세대의 아이러니

얼마 전 참석했던 한 HR 세미나에서도 ‘세대 차이’가 가장 뜨거운 논의 주제였습니다. 많은 기업이 “Z세대를 어떻게 모시고 살아야 하냐”가 화두였습니다. 모두가 Z세대를 ‘시어머니’ 대하듯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 대기업 임원의 발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우리가 관심을 보일수록 오히려 거부감을 느낍니다. 상무님들이 제발 점심 먹자고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팀 회식을 거부하며 "저 필라테스 가야하는데요. 팀 회식비를 1/N해주면 안되나요?" 라고 당당히 요구하기도 합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쇼크입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고 뉴노멀인걸요. 그들의 소중한 여가 시간과 근무 외 시간은 배려를 넘어 사수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으쌰으쌰 함께 밥먹고 술 마시다 보면 가까워지고 밍글링될 수 있다는 예전의 팀빌딩 문법도 과감히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 시간까지 방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적어도 일하는 장면에서 만큼은, 그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자주’ 개입하고 성장 피드백을 주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게 오히려 그들과 잘 지내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90년대생의 몰입도 데이터를 회귀분석해보니, 그들의 몰입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상사의 피드백 빈도(β = .138, p = .025)와 업무에서의 흥미와 보람(β = .155, p < .001) 두 가지였습니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태도가 가장 위험합니다. 역피라미드 구조에서 중요하고 큰 일을 그들에게 배분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자주 들여다보고, 작은 성공 경험을 쌓도록 도와줄 때, 그들의 몰입도가 살아납니다. 그런 작은 성취와 인정이 쌓일 때, 이들은 공정성과 성장을 동시에 체감하게 되고, 조직과의 연결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몇 가지 해법

이제 필요한 건 팀장의 관리 역량만이 아닙니다. 회사 차원에서 구조를 바꾸는 시도입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몇 가지 실험 속에서 주니어들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동료 CFT

주니어들끼리 CFT를 구성해 고객과 시장 반응을 빠르게 시험해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주제, 다가가기 쉬운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 좋습니다. 피어 그룹(Peer Group)끼리의 프로젝트는 성취와 보람을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핵심은 의사결정 구조와 프로세스를 단순하게 유지해,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이 지점에서 주니어 CFT에 실패하곤 합니다.

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무와 전혀 무관한 전사 아이디어 과제는 자칫 ‘추가 업무’나 ‘대학교 팀플’처럼 전락할 수 있기에 현 직무와 맞닿은 사업부 단위 CFT가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냅니다.


리버스 멘토링

주니어가 시니어의 멘토가 되어 멘토링을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이 역시 이미 많은 회사에서 시도하고 있어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버스 멘토링은 단발성 식사나 티타임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뭐가 유행하냐? 너희끼리는 무슨 얘기하면서 노냐?" 기웃거리며 요즘 용어 몇 가지 주워듣는 것은 리버스 멘토링이 아닙니다.


소위 'zen Z 전문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동료가 있습니다. 인턴이든 신입사원이든 주변 모든 주니어들이 그를 따르고 좋아합니다. 동료가 주니어들과 교류하는 장면을 보면 시니어나 선배, 꼰대스러운 바이브가 전혀 없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친다거나 잔소리를 한다거나 요즘 것들의 문화를 은근히 폄하하는 경계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모르면 모르는대로,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대로 '그렇구나' 한다고 합니다. 같이 까르르 까르르 하고 만다고요. 그렇게 놀다 보면 하나 둘 경계를 허물며 깊은 대화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 때가 되면 그들에게서 새로운 관점과 정말 희한하고 힙한 아이디어들도 얻을 수 있다고요.


동료 CFT이든 리버스 멘토링이든 젊은 세대에게서 ‘힙함’과 ‘성숙함’을 동시에 기대하는 건 욕심입니다. 힙함은 그들의 강점이지만, 성숙은 시간이 채워줄 몫입니다. 회사가 실망할 이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종종 이런 주니어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후 "솔직히 결과는 별거 없더라." "주니어는 주니어더라." "써먹을게 없더라." 라는 실망섞인 후문을 남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기성의 잣대로 재단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1 on 1 피드백

이 역시 너무 당연하고 흔한 그거 맞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너무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타사의 90년대생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우리 팀장님은 저랑 한 달에 한번씩 1on1을 해주고 계세요. 예전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너무 놀랍고 감동이었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1on1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는 '나'의 고유함과 성장에 대해 훨씬 더 값지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목표수립 면담, 성과평가 면담 등 HR 캘린더에 따라 필수적으로 면담 사이클이 운영됩니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은 이런 공식적인 1on1 말고 상시로, 수시로, 자주 진행되는 1on1을 훨씬 더 의미있게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팀을 관리하다보면 공식 면담도 사실 너무 버겁고, 20명이 넘는 대팀을 맡고 있는 팀장들은 상시 피드백을 권고 받아도 "배부른 소리 한다."고 화낼 수 있습니다. 어떤 조직장님들은 그래서 주니어들끼리 커미티를 만들어주고 주기적으로 삼삼오오 그들을 초대해서 비공식적 간담회를 하기도 합니다. 간담회요?주니어들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게 뭐 대단하고 새로운거냐 싶겠지만, 프로그램의 참신성보다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정서를 90년대생은 대단하게 여깁니다.


90년대생이 화났다

90년대생이 화가 난 건 단순히 성격이나 세대 차이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 분노의 뿌리에는, ‘내가 기여하거나 성장할 것이 보이지 않고,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구조적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회사가 진짜로 붙잡아야 할 것은 복지나 이벤트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성취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 공정하게 주니어 계층의 기여를 인정하는 문화, 그리고 귀찮을 정도로 자주 주어지는 '진짜 피드백'입니다. 성장의 서사를 그들 손에 쥐여주는 것만이 그들과의 공존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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