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 바닥일 때 조직개발은 쓸모 있을까?
좋은 조직개발 사례를 얻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수 많은 실패를 견뎌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은 프로그램의 구조적 허점일 수도 있고, 팀원 간의 갈등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중 제가 겪은 가장 회복하기 어려웠던 실패는, 리더의 인격 실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조직개발에서 리더가 취지와 분위기에 공감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 단계에서 리더와의 대화를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나눕니다. 팀의 현황과 갈등의 맥락,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까지 가능한 한 많이 맥락들을 확인하고, 이를 워크숍 설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리더의 본성과 습관까지 통제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현장에서의 말버릇이나 감정의 작은 파동은, 아무리 치밀하게 설계된 워크숍이라도 순식간에 실패로 이끌기도 합니다.
관계 연구자 존 고트먼(John Gottman)은 관계 해체 연쇄 모형(Cascade Model)에서 관계를 파괴하는 의사소통 패턴(비난, 경멸, 방어, 회피)이 단 몇 차례 반복되기만 해도 관계와 신뢰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짧지만 날카로운 농담 한마디로도 심리적 안전감이 바로 무너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는 대기업 현장에서 수많은 조직을 대상으로 조직개발을 하면서 너무나 공감되는 명제이기도 합니다. 조직개발 워크숍 현장에서 느껴지는 소통의 '쌔함'이 불러일으키는 꺼림칙한 파국은 빗겨나는 법이 없습니다.
A팀 대상으로 '몰입 회복을 위한 조직 활성화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팀은 이미 문화적 긴장이 상당히 쌓여 있는 팀이었습니다. 팀장이 명확한 대의나 명분 없이 이 일, 저 일을 무분별하게 받아온다는 이유로 팀원들은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팀원들이 “늘 감정이앞서는 팀장과 대화가 어렵다”는 불만을 자주 드러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배경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기에 저 역시 퍼실리테이션을 하는 내내 조심스럽게 대화를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워크숍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드디어 그 순간이 왔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꺼내지 못할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팀의 선임급 구성원이 차분하고 진정성 있게, 그러나 비교적 단호하게 문제를 언급했고, 다른 팀원들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던 찰나...갑자기 팀장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내가 제일 힘들다고. 그걸 왜 몰라줘요?”
공기와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워크숍에 과몰입해준 것에 감사라도 해야했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와중에 용기를 내어 진심을 꺼내려던 팀원들은 움츠려 들었고, 대화의 문은 쾅 닫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이 팀의 민감한 이슈는 다시 꺼내지 못했습니다.
B팀은 20명이 넘는 대규모 팀이었고, 워크숍 주제는 소통 활성화와 협업 무드 조성이었습니다. 버크만 진단으로 팀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탐색하는 시간도 있었죠. 여느 워크숍 때와 마찬가지로 버크만 디브리핑은 순조로웠고, 마무리 단계에서 저는 물었습니다.
“버크만 진단으로 본 우리 팀은 어떤 팀인 것 같나요?”
한 팀원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팀은 영양솥밥 같아요.”
각자 고유한 개성과 강점을 가진 ‘제철 재료’들이 모여, 한 솥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그의 해석은 훈훈했고 더할나위 없이 건전했습니다. 그러나 팀장은 흐뭇한 표정 대신 실소로 응수했습니다.
“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솥밥인데. 그걸 무슨 맛으로 먹어요?”
대한민국에서 솥밥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그런데 그걸 이 타이밍에 얘기한다고? 팀장이 농담(?)삼아 내뱉은 발언 한 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화기애애했던 표정들이 굳었고, 현장은 차가운 침묵과 정적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두 팀 모두 애써 의미있게 마무리하려 했지만, 정성적 평가에서도, 정량 데이터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극저몰입 팀은 이미 리더십 기반이 붕괴되어 있어, 그 상태에서 조직개발을 진행해도 효과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리더가 팀 분위기를 결정하는 비율을 70% 이상으로 추정합니다(Zenger & Folkman, 2020). 특히 사회적 감정 전이(Social Emotional Contagion) 이론에 따르면, 리더의 표정·어조·감정 반응이 팀원들에게 그대로 전이됩니다. 즉, 리더의 무심한 한 마디가 팀 전체의 감정 기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연구에 따르면, 리더의 반응이 방어적이거나 조롱처럼 느껴지면 팀원들은 위험한 발언—즉, 솔직한 의견—을 하지 않게 됩니다. A팀과 B팀 모두 이 함정에 빠진 사례였던 것이죠.
몰입도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어느날, A팀 팀장과 사석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 워크숍 때문에 저 트라우마 생긴 것 같아요. 팀원들이 더 얘기를 안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복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반응이 어떻게 팀의 대화를 닫아버렸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리더의 자기인식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날 절실히 느꼈습니다. 동시에 조직개발자로서 사전 워크숍 설계 단계에서 리더들에게 훨씬 더 깊고 치밀한 개입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워크숍 방식의 조직개발 개입의 한계와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구조적 문제, 리더십의 자기인식 부족, 팀 간 상호작용의 깊은 뿌리까지 모두 맞물려 움직였고, 그 모든 것을 한 번의 워크숍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실무에서 저는 무엇을 더 중점에 둘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리더십 개선에 대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더 강하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워크숍 설계와 실행뿐만 아니라 리더의 자기인식 훈련, 피드백 문화 정착, 그리고 조직 차원의 심리적 안전성 강화 같은 요소들을 함께 엮어 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커졌습니다. 셋째, 팀의 몰입과 성과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성공이 아니라, 리더와 팀이 함께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한 변화의 결과라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조직의 성장과 활력을 돕는 조직개발 실무자로서, “왜 이 문제가 생겼는가”를 묻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리더십과 시스템이 필요한가”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집중하려 합니다. 워크숍의 설계 자체를 넘어서, 리더십 개발과 조직문화의 정착을 함께 바라보는 holistic한 시선과 접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