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인 아줌마는 아직도 한쿡말이 어려워

Complexity of the Korean language

by seanius

매년 설날이 되면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박사과정을 위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던 첫 해인 2016년 설날이 생각난다. 나는 미국에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민을 갔었다. 당시 동생은 더 어린 나이인 12살이었고, 2년 정도가 지나니 동생이 한국어를 조금씩 잊어먹었고 발음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영어를 빠른 시간에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국어 멀리하기'와 '한국사람 멀리하기'를 시행 중이었지만 어쩐지 나의 한국어는 전혀 어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미국에서 대학교를 갔고 내가 마주하며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과 교회에 지인들 뿐이었다. 그 외에는 항상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생각도 영어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한국어도 영어도 마음 편하게 구사할 줄 아는 bilingual 이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결혼을 하고 나서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씩 연구실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얼마나 한국어에 서툰지 알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나를 처음으로 본 사람들은 놀랐다고들 했다. 내가 한국어를 잘 못하는 미국에서 태어난 2세일 줄 알았는데 간단한 의사소통에서는 전혀 한국어의 어눌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은 박사과정에 합격하고 나서 교수님께 보냈던 나의 첫 이메일에서였다고 한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박사과정 합격을 받고 나의 지도교수님께서 잘 준비하여 입학하라는 메일을 주셨다. 그게 설날 즈음이어서 나는 지도교수님의 메일에 답장을 보내며 설날인사를 이렇게 했었다고 한다.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좋은 한가위 보내세요."


그렇다. 교수님께 설날인사 대신 추석인사를 드린 것이었다. 그냥 모르면 좋은 명절 되시라고 할걸... 교수님은 이 이메일을 연구실 전체메일로 forward(전달) 하셔서 모두가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것 외에도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대화하게 되면서 어순에서 오는 말실수들도 있었다.


'언제'같은 시간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목적어' 같은 경우 그 단어를 꼭 문장 끝에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에서 사용하는 어순과 헷갈렸던 것이다.


"이 실험 데이터 결과는 나온 건데. 어제. 추가실험도 해야 할 것 같아요. Maybe 내일?."

"우와. 정말 맛있는데? 네가 만든 거야, 이 쿠키?


영어에선 동사가 문장 앞단에 먼저 나오고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나 목적의 대상이 문장 뒤에 나온다는 것을 나는 한국어로 이야기하면서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한국어 발음은 유창하지만, 한국어로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아 한국어 구사에 있어서 미숙함 때문에 부끄러운 적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연구실에서 '미국인 아줌마'가 되어버렸고 나의 말실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외에도 연구실에서 나를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으로서 기대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논문의 문법 교정이었다. 사실 나는 이과이지 문과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전공하는 사람보다 영어 문법이 완벽하지 못했었다. 이 부분은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대화와 논문이나 사설에 싣리는 언어가 다르듯이 영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문법도 더 열심히 공부했고 나의 Academic writing은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며 미국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늘었었다.


이제 한국에 온 지 어느덧 9년 차가 되었고 박사를 취득하고 교수님과 창업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어로 이메일이나 문서를 써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제법 한국어 구사는 물론 띄어쓰기도 잘하고 수월하게 문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한다. 최근에도 실수 하나를 했다.


우리 회사와 같이 협업을 하는 회사가 있고 약물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몇 가지를 보내주셨다. 나는 이 약물들에 대한 정보가 없고 소스코드만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걱정에 질문을 드렸는데 괜한 걱정이었고 나는 다음과 같이 회신을 드렸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어떤 물질인지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혹시나 약물효과에 영향을 줄까 노파심에 말씀드렸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실험은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문서 작성할 때는 영어로 작성하고 한국어로 번역할 때가 많다. 이 이메일을 쓰기 전에도 먼저 영어로 사고를 했었다.


"Thank you so much for your response. With the fact that I am not acknowledged what these compounds are, I was a bit concerned whether the condition of these compounds might affect the drug efficacy. As you menteiond, it is not likely be an issue about the drug efficacy, I will proceed the experiments. Thank you again for your consideration."


이렇게 생각하고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a bit concerned' 혹은 'unecessarily worried about'을 어떤 한국어로 표현해야 될까 하고 찾아보다가 내 기준에 꽤 괜찮아 보이는 단어를 선택했고 그것이 '노파심'이라는 단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에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예전에는 이 단어를 '동등한 위치나 자신보다 낮은 위치 혹은 어린 사람이 사용'했었기 때문에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또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린 미국인 아줌마이다.


한쿡말,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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